엄동설한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뚫고 2년 만에 공연을 보았다.
QR코드를 찍고 체온을 재고 안심콜을 누르고서야 입장표를 받고 들어갈 수 있었다.
거리두기 때문에 한 자리 띄어 앉고 보니 정말 관객이 몇 명 안 되었다. 안 그래도 작은 소극장인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서 빨리 바이러스가 진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한 커플의 인생을 쫓아가 보자
한 남자 그리고 한 여자.
두 사람이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지고 연애하기까지 몇 분도 걸리지 않는다.
연애할 때는 서로 죽고 못 살 정도로 닭살 커플이지만 서로 떨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진다.
하지만 서로의 노력 끝에 다시 만나게 되는 두 사람. 결국 결혼식을 올리고 인생의 쳇바퀴 안에서 울다가 웃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혼자 남게 될 사랑을 위한 작은 준비. 그 큰 쳇바퀴를 뒤로 돌려보며 다시 떠올리게 되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
남편 김춘식 씨와 아내 박순옥 씨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노년기에서 중년 시절,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고 둘은 심하게 갈등한다. 다시 청년 시절로 돌아가 연애 초기 달달한 커플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의 이야기까지. 마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서사를 닮아있다.
재기 발랄한 아가씨, 시집살이하는 며느리, 실명한 할머니 등 사랑스럽고 가엾고 득도한 듯한 여자 박순옥 역할은 배우 김가현 씨가 연기했다. 서울로 유학 간 부산 청년, 낚시광 남편, 할머니를 놀리는 할아버지 등 청년 중년 노년의 김춘식 역할은 배우 조준 씨가 연기했다. 참고로 서울에서 공연했던 배우들이 거의 그대로 대전에 와서 공연했다.
잔잔하고 뻔한 얘기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연극 뷰티풀 라이프는 과거를 회상하는 2인극으로 두 배우가 부지런히 분장을 바꿔가며 1인 다역을 한다.
김춘식 씨가 듣는 라디오에서 가수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흘러나오는 순간, 너무나 탁월한 선택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쓸쓸하면서 아련해지는 세월이 묻어나는 음색과 노랫말이 연극 뷰티풀 라이프의 주제와도 잘 어울린다. 이 작품에는 돈이 많거나 잘 나가는 스타 캐릭터가 없다. 그저 주변에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라 더 공감이 간다. 애드리브 가득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본인들은 웃지도 않고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코믹 연기에 연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머리카락과 의상 그리고 배우들의 목소리도 변해가는데 얼굴 주름만큼은 너무 변하지 않아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내가 앉은자리가 무대와 아주 가까운 첫째줄 가운데였기에 배우들의 숨소리마저 잘 들리는 위치였다. 1인 다역을 해야 하기에 얼굴 분장은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관객이 더 많았다면 웃음소리도 더 많고 훌쩍이는 소리도 더 많이 들렸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다.
연극 뷰티풀 라이프는 재미있고 감성적인 스토리에 웃다가 마지막에는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부모님과 같이 관람해도 괜찮은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걸 보신 부모님의 반응은 상상에 맡기겠다......
그럼에도 시간은 간다
세상에서 제일 무심하고 무서운 것은 시간이 아닐까. 긴 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이고 자식도 다 필요 없고 옆에 있는 남편과 아내가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 아픈 곳, 불편한 것들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도 배우자밖에 없다. 죽음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죽음으로 헤어지게 될 때 후회가 없도록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잔잔하고 감동을 주는 연극을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추천하는 연극이다.
아름다운 인생
늙어서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볼 때 그 순간에는 힘들고 어려웠던 일도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꼭 늙어서 돌아보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 자주 돌아보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삶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최고이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온전히 주심에 감사하며 나는 오늘도 뷰티풀 라이프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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