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로 지친 사람들에게 전하는 위로
최근 들어 나이 듦이라는 불가항력 조건에 새로운 시대적 화두가 더해졌다. '어떻게 살 것이가'를 넘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란 조건이 더해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정해진 것이 없다. 그래서 더 대답하기가 어렵지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화두에는 정답이라고 할 만한 것이 몇 개 있다. 어딜 가나 손 잘 씻고, 마스크는 필수로 착용하기, 가능한 한 집 밖으로 나가지 말기.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예술을 향유하는 지적인 고등 동물이다. 그런데 집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더 이상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손을 함부로 잡을 수 없고 잡아서도 안 되게 되어 버렸다. 보고 싶은 사람을 직접 얼굴 맞대고 볼 수 없다. 그런 조건에서 예술을 향유하라고? 집에서 향유할 수 있는 예술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인간 예술의 총 집합체라 할 수 있는 공연은 대면이 필수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공연으로 돈을 버는 모든 예술가들의 생존 문제도 있다. 바이러스가 집권하는 시대가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더는 예술을 즐기는 것을 미룰 수 없다. 누군가는 나를 손가락질하더라도 할 수 없다. 마스크 잘 쓰고 손 잘 씻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더 드레서는 공연기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에 꼭 보러 갈 마음이 있는 작품이다. 게다가 배우 송승환 씨를 다시 무대에서 볼 수 있다!
무대 뒤에서의 배우들 모습
이 연극은 독특하다. 연극 속의 연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관객은 무대 앞의 화려한 배우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극 내내 무대 뒤에서 무대를 보게 된다. 연극 속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무대를 막 뒤편에서 보게 된다. 찢어진 무대 의상을 급히 꿰매고, 갑자기 잊어버린 대사를 다시 외우고, 지워진 화장을 고치고, 오래 입어 낡고 헤진 무대의상을 손질하며 배우와 스태프 일을 동시에 하는 배우들의 치열한 모습을 보게 된다. 누군가는 작은 배역에도 행복하게 임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작품을 써내려가며 전쟁 중인데도 공연은 계속된다.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에도 극장을 찾아 연극을 보러 하나둘씩 들어오는 관객들과 그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연기를 하는 배우들처럼 말이다.
평생을 배우로 살아온 늙은 배우와 그의 오랜 드레서로 살아온 남자, 노먼
1942년 겨울, 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 공습이 끊이지 않았던 영국의 어느 작은 극장. 227번째 리어왕 공연을 앞두고 노배우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급기야 병원에 실려가게 된다. 아내이자 같은 극단 배우인 사모님은 무대 연출자와 공연을 취소하기로 결정한다. 공연을 막도 올리지 못한 채 중단될 위기에 처한다. 그때 다시 돌아온 노배우와 그의 드레서인 노먼은 예정대로 공연을 올리려고 한다. 배우들도 준비가 부족한 상황인데 노배우는 '리어왕'의 첫 대사를 잊어버린다. 공연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공습의 공포는 극장을 집어삼킬 듯하다. 막이 오르고 리어왕이 등장해야 하는 순간 노배우는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노먼의 도움으로 다행히 공연은 예정대로 끝이 난다. 하지만 노배우가 지친 듯 휴식에 빠져들고 그렇게 세상을 떠난다. 노배우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 노먼과 죽은 노배우의 진짜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연극 '더 드레서'는 직접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죽음 언저리에 선 노배우의 모습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 또한 죽음 언저리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죽은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 되느냐'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힌트는 아닐까. '태어날 때 자신은 울고 사람들은 웃지만, 죽을 때는 자신은 웃고 사람들을 울게 하라'라는 정말 명언이다. 안타깝게도 노배우는 웃으며 죽지 못했다. 그래서 무섭다. 나 역시 죽을 때 웃지 못하고 떠날까 봐서 말이다.
건강하게 다시 돌아온 배우 송승환
TV 아역 배우로 시작해 연극, 영화, 무대 제작자였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랫동안 활동을 못하셨다. 당뇨합병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은 절망적인 시간도 있었다고 나는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는 배우로서의 송승환 씨를 못 볼 줄 알았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그는 다시 재기했다. 나에게 그는 할리우드 아역 배우였던 셜리 템플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하지 못했던 걸로 안다. 하지만 그는 변함없이 우리 곁에서 배우이자 제작자로 남아있다. 어떻게 보면 '더 드레서' 속 노배우와 많이 닮아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노배우처럼 죽지 않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이 연극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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