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현실 로맨스
친했던 선배와 사랑했던 옛 연인의 결혼식에 참석한 정훈. 씁쓸한 기분으로 밥 한 끼 먹으려던 그 앞에 연어 초밥 내놓으라며 막무가내로 엉겨 붙는 이상한 여자 시후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녀와 실랑이 하는 도중에 정훈은 각자의 옛 연인이 서로 눈 맞아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시후는 정말 죽고 싶다며 정훈에게 하룻밤만 같이 지내자며 정훈을 보챈다. 이에 정훈은 그녀의 엉뚱한 매력에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정훈과 하룻밤 같이 자게 된 시후. 옛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낯선 남자에게 쉽게 몸을 허락한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져 잠들지 못한다. 그동안 결심해온 자살을 하려고 수면제를 하나씩 집어삼킨다. 이를 발견한 정훈은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하룻밤 자살 소동으로 좀 더 가까워진 시후와 정훈은 서로의 관계를 섹스 파트너로 정의하고 만남의 횟수를 차근차근 늘려간다. 시후는 자꾸만 편하게 느껴지는 정훈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정훈은 자신의 평소 연애관에 어긋나게 만난 시후와의 관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감정보다 이성으로 시후를 만난다.
더 이상 잠자리는 안 된다며 남매 사이로 지내자는 정훈의 제의에 시후는 겉으로는 쿨하게 동의한다. 그러나 마음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다. 정훈은 우리가 아무 연락없이 일 년 안에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분명 운명일 거라면서, 그때는 진짜 연인관계를 하자며 아름답게 이별을 포장하면서 시후를 떠나보낸다. 시후는 쓰린 마음을 삼키며 정훈의 집 현관문을 닫고 나가 버리고, 정훈은 가버린 시후의 뒷모습에 저도 모르게 아쉬움을 느낀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우연히 마주친 정훈과 시후. 또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은 어색함에 서로 말없이 바라본다. 다시 헤어질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정훈을 대하는 시후. 다시는 시후를 보내지 않겠다는 정훈. 이들의 극적인 하룻밤은 현재 진행형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 이야기'이다. 뻔하다 싶겠지만 연극 '극적인 하룻밤'은 뻔하고 진부한 방식의 통속극이 아니다. 옛 연인들의 결혼식에서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독특한 시작과 솔직하고 개성이 넘치는 직설적인 배우들의 대사는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사랑 이야기'를 툭툭 던지듯 말한다. 제목 그대로 '극적인 하룻밤'을 보낸 후,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감정의 차이와 아슬아슬한 감정의 변화를 관객들은 느끼게 된다.
사랑은 일회용일까 아님 소장용일까
원나잇 스탠드는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일상이거나 혼자만의 비밀이 된다. 또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아닌 남들의 이야기 혹은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짜릿한 일탈과 상상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어찌되었거나 직접적인 경험으로든 미국 드라마 시리즈인 '섹스앤더시티' 같은 매체를 통해서든 남녀간의 소통 방식 중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낯선 사람에게서 느끼는 몸으로의 또 다른 감정. '극적인' 하룻밤을 보낸 그들에게 사랑은 일회용 또는 소장용이라는 명제를 던져주고 선택하라면 선택하지 못할 것이다. 21세기 청춘 남녀들은 그렇다. 이 작품은 그런걸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극적인 하룻밤을 보낸 그들을 통해 '그들은 각자 행복했습니다...'가 아닌 '그래서 그들은...'으로 시작되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그 이후'의 시간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원나잇스탠드 이후, 쿨한 '척'하는 그들에게 그날 밤은 사랑일까 아님 사고일까.
심사평이 좋지 않았던 당선작, 그러나...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연극으로 보지 않고 대본으로 먼저 봤다. 참 순서가 이상하지만 사실이다. 2009년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집 - 희곡 편을 우연히 서점에서 봤는데 제목에 끌려 제일 먼저 봤다. 그리고 당연히 그 책을 샀다. 흔하지 않지만 가끔 당선작이 두 명 이상 나올 때가 있다. 이 경우도 그런 경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작품을 선정할 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설전이 있었다고 한다.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나이가 많은, 유교 보이들이라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 방식 중 하나인 원나잇 스탠드를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공동 당선작으로 선정되었지만 뒤끝이 남았던지 심사평이 다른 당선작들에 비해 좋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다른 당선작품은 무대화가 안 되었는지 소문도 없는데 이 작품은 끊임없이 무대에서 공연되었고 그게 벌써 12년 째이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말할 것도 없다.
희곡이 문학 장르에 속해있지만 제대로 문학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공연에 특화된 희곡이 아니라 읽히는 희곡에 더 주목하는 심사위원들의 관습에 사이다를 날려준 작품이다. 극작가 황윤정 씨에게 연극 팬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영화로도 각색되어 '윤계상 X한예리'씨가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연극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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