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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공연 이야기

파격적인 의상으로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 유자 왕

by 매들렌 202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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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드레스를 입은 피아니스트 유자 왕.
유자 왕 피아노 독주회

 

 

끝없는 매력으로 세계가 열광하는 유자 왕

파격적인 의상과 아찔한 하이힐을 신은 피아니스트!!! 보수적이었던 클래식 음악 연주 무대의 의상이라는 편견을 깨고 자신만의 개성을 강렬하게 드러내어 현대인들의 눈과 귀를 모두 자극하는 그녀다. 그녀의 무대 의상은 연주 실력보다 더 주목을 받으며 논란과 화제를 일으켰지만, 그것은 이제 유자 왕만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상뿐만이 아니다. 괴물 같은 테크닉과 관중들의 혼을 쏙 빼놓는 무대 매너까지 모두 갖춘 유자 왕은 그 어떤 피아니스트들도 대신할 수 없는 끝없는 매력으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오고 있다. 2020년 예정되었던 우리나라의 연주회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취소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2022년,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첫 리사이틀 투어가 시작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가져와 보았다.

 

 

 

피아니스트 유자 왕

그녀는 1987년 2월 10일, 중국 베이징 시에서 타악기 연주자인 아버지와 무용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으며 중국의 최고 수준의 음악교육 기관인 중앙음악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미국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커티스 음대로 유학 가서 피아노를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한다. 그녀는 이름 높은 메이저 콩쿠르에 출전하거나 거장 피아니스트한테 가르침을 받는 대신, 10대 후반부터 바로 연주활동을 시작했으며 스무 살부터는 전 세계로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유명해졌다. 현재 랑랑, 윤디 리(범죄자)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들 중 한 명이다. 2009년에 도이치 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었으며 현재까지도 그라모폰 소속 연주자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녀가 최고로 인정받는 이유

자타공인 최고의 테크니션 피아니스트 중 한명이며 현재 기량이 상향평준화된 피아니스트계에서도 독보적인 기교파로 분류되고 있다.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는, 2007년 샤를르 뒤투아 지휘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 그녀는 원래 협연자였던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대타로 나와 연주했는데 그 엄청난 파워와 테크닉과 파격적인 연주복으로 굉장한 화제를 모았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그녀의 가치는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작품에서 아주 잘 드러나는데, 코끼리 협주곡이라고도 불리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같은 매우 어려운 난곡을 아무렇지 않게 쳐내는 괴물 같은 테크닉을 보여준다. 또한 그녀의 연주는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스 터치가 거의 없고 타건 자체도 깔끔해서 빠르게 연주 중임에도 각 음들이 또렷하게 잘 들린다. 

 

 

 

피아니스트 유자 왕의 무대 의상
유자 왕의 파격적인 무대 의상.

 

 

파격적인 의상으로 연주하는 그녀

연주할 때 페달을 밟아야 하는 피아니스트임에도 불편하지 않는지 보기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엄청난 킬힐을 신고 무대에 오른다. 그녀한테는 전통적인 이브닝 드레스의 롱스커트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엄청난 킬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면 바로 속옷이 보일 만큼 짧은 스커트에 어깨가 훤히 드러난 옷이 그녀가 늘 선택하는 무대 의상의 스타일이다. 유자 왕 본인과 그녀의 팬들은 젊은 감각으로 본인의 표현하는 바를 마음껏 표현하는 데 있어서 파격적인 무대 의상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단지 주목을 끌기 위해서 하는 섹시 마케팅이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도 만만치가 않은 형국이다.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의 피아니스트 임현정 씨는 청중들이 연주자 자신보다는 음악에 더 집중해주길 바란다며 남성 음악가들의 연미복과 똑같은 검은색 드레스만 고집한다. 

 

나 역시 임현정 씨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유자 왕은 젊은 감각으로 본인의 표현하는 바를 마음껏 표현하는 데 있어 짧은 의상과 킬힐은 하나의 수단이라고 하는데 클래식 연주자로서 도대체 무엇을 마음껏 표현하려고 그런 의상을 착용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연주자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음악성이 짧은 의상과 킬힐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의문이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그녀의 연주회에서 그녀의 의상과 한껏 드러낸 몸매로 주의 집중이 쏠려 제대로 음악을 감상할 수나 있을까 싶다. 물론 음악성이라는 것이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공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쇼팽부터 스트라빈스키, 하물며 바르톡이나 프로코피에프의 시대에도 여성들은 사회 활동 및 참정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니 의상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클래식 음악 작품은 그런 시대적 배경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뉴에이지 장르나 재즈 연주가라면 또 모르겠지만 클래식 작품을 해석하고 연주하면서 저런 무대 의상은 개인적으로 아니라고 본다.  이건 유교 걸, 유교 보이를 떠나서의 문제이다. 그녀에겐 음악보다도 개인의 외모 꾸미기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실제로도 연주 테크닉은 훌륭하지만 곡 해석에는 상투적인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녀의 음악성에 무언가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테크닉만큼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자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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