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다한 공연 이야기

마음껏 웃고 소리 질러도 좋은, 관객이 주인공인 마당 놀이

by 매들렌 2022. 2. 21.
728x90

MBC 마당놀이 심청전 중 한 장면
1988년 MBC 마당놀이 '심청전'의 한 장면. 심봉사 역에 윤문식. ⓒ국가기록원

 

우리의 전통 연희, 마당놀이

마당놀이는 '마당'과 '놀이'의 복합어로 '마당에서 하는 모든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사어인 '마당극'하고는 차이가 좀 있다.  마당극은 근대 이전의 전통 연희(演戱)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진보적 연극 양식의 하나로써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에 자생적으로 발전하였다. 내용은 주로 사회풍자였다. 

마당극은 마당이나 너른 실내에서 열리며 꽹과리, 장구, 북 등의 악기로 흥을 돋우고 노래와 춤이 있고, 등장인물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고, 일정한 줄거리가 있다. 이것은 오늘날의 마당놀이와 유사하다. 우리의 전통 연희(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무대와 관객이 분명하게 갈라져 있는 서양의 양식과 반대로 무대와 관객과의 거리가 없다는 점이다. 거리가 없기 때문에 무대와 관객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딱히 무대라고 불릴 것이 없을 만큼 공간도 자유롭다. 예를 들어 시장 한 복판에서 판소리를 시작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몇 명이 됐든 소리꾼 주변을 둘러싸게 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무대와 관객이라는 자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 운용이 자유롭고 유연하다. 마당극은 1990년대 후반, 학생운동이 쇠퇴하면서 점차 사라져 갔다.

 

 

 

삼십 년 동안 250만 관객을 모은 전통 연희의 한 판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방송국이나 국립극장 등이 공연한 상업적 마당극이 보편화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마당놀이의 시작이었다. '마당 놀이'는 전통 설화나 판소리, 고전 소설에서 소재를 취하고 전통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창극과 유사한 반면, 마당을 활용한 연극적 표현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마당극'과 유사하다. 내가 어릴 적이었던 80년대 중후반, 나도 MBC 방송국에서 방영해주었던 마당 놀이를 가족들과 즐겨 보았던 기억이 있다. 어찌나 재미있고 우습던지 웃고 떠들며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런데 그때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방송국 마당 놀이 인기가 천정부지로 올라 명절 때만 되면 단골 프로그램으로 제작해서 방영해주었다. 

 

방송국 마당놀이가 인기를 끌자 자연스럽게 마당놀이에 출연한 배우들도 인기가 많아졌다. 배우 윤문식 씨와 배우 김성녀 씨는 마당 놀이 프로그램의 고정 배우였다.  어쨌든 1981년에 MBC는 허생전을 시작으로 잘 알려진 고전 소설을 소재로 춤과 노래 그리고 재담으로 어우러진 공연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제작하여 마당놀이하면 MBC를 연상케 했다.  

 

 

마당놀이 공연 중인 김종엽, 윤문식 그리고 김성녀
왼쪽 뒤에 계신 분부터 배우 김종엽, 윤문식 그리고 김성녀 ⓒ조선일보

 

 

 

마당놀이는 땅바닥이나 마룻바닥 같은 곳에 관객이 둘러앉는 개방형 원형무대에서 공연되므로 4면이 모두 객석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듯이, 관객은 무대 가까이에서 배우를 보고 웃기도 하지만, 맞은편 관객이 웃는 모습을 보고 따라 웃기도 한다. 객석과 무대 사이는 보통의 액자 무대처럼 높지 않으며 단지 상상의 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우리의 전통 연희처럼 무대와 객석 사이의 확실한 경계선이 없다. 아무런 무대 장치가 없어도 배우가 '저어기, 저~ 문 너머에~'라고 하면 그곳이 '문 넘어 어딘가'가 된다.

 

고전에서 출발한 작품은 배우들의 맛깔난 대사와 연기로 전달된다. 배우들의 재담과 익살에 쉴 틈 없이 빠져들고, 서로의 흥을 돋우면서 한바탕 어울리다 보면 남녀노소를 넘어 삽시간에 하나가 된다. 나 역시 비록 연희 현장이 아닌 집에서 TV로 봤지만 가족들과 한마음으로 웃으면서 시청했었다.  무엇보다 마당놀이의 매력은 관객과의 호흡에 있다. 관객은 다수의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확인하고 공감하면서 놀이의 완성자인 동시에 주체가 된다. 의상과 분장은 사실적이기보단 특징적이며 탈을 쓰기도 한다. 무대는 세트를 거의 쓰지 않고 한쪽에 대형 걸개그림을 걸거나 깃발 혹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긴 천 등으로 구별한다. 음악과 음향은 사물(꽹과리, 징, 장구, 북) 악기가 주가 되고, 가끔 오케스트라 연주도 이용했다.

 

방송국에서 정규 방송으로서의 송출은 언제부터 멈추었는지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방영하지 않았을 뿐이지, 국립극장 같은 오프라인 장소에서는 30여 년간 2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를 하였다고 한다. 나도 이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부터는 판이 열리지 않아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장르로 여겼다. 그러나 2014년,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돌아온 마당놀이는 국립극장 해오름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인기를 얻고 있었다. 팬데믹 이후로는 다시 판이 열렸는지는 모르겠다.

 

 

 

국립극장으로 돌아온 마당놀이

2014년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판이 열린 마당놀이는 첫해 '심청이 온다'를 시작으로 2015년 '춘향이 온다', 2016년 '놀보가 온다'로 이어졌다. 주로 천막에서 펼쳐지던 마당놀이를 극장으로 옮겨 온 것은 안호상 국립극장장에 의해서였다. 해오름 극장의 넓은 무대를 마당으로 삼아 서양식 대형 극장 안으로 들어온 마당놀이는 조명과 음향 시설 조건 등이 개선되어 극적 효과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관객이 사방으로 둘러앉아 보는 마당놀이의 원래 형태를 가져오기 위해 무대 위 삼면에 가설 객석을 설치하여 배우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했다. 마당놀이 1세대인 극단 미추의 윤문식, 김성녀, 김종엽 배우는 거의 40년 가까이 매년 20만 동원이라는 기록적인 관객을 불러 모아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진짜 이 세 콤비의 연기와 재담을 따라올 배우들이 없을 것이다. 걱정은 그들의 뒤를 잇는 후배 배우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모르긴 해도 이 세 명의 배우들을 뛰어넘을 후배들은 결코 없을 것 같다. 

 

김종엽 김성녀 윤문식
마당놀이 삼인방. 왼쪽부터 김종엽 김성녀 윤문식. ⓒ뉴시스

 

 

팬데믹이 끝나면 신명 난 마당놀이 한 판 보고 싶다

옛날처럼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면 좋으련만은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 같으니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어릴 때 본 마당놀이 방송은 정말 아득하지만 기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그런 것을 볼 여유도 없지만 그런 것을 방영해주지 않아서 더 못 본다. 중국에서 자꾸 우리 전통을 자기네들 것이라고 우기고 있는 시점에서 옛날처럼 마당놀이를 명절 특집으로라도 송출해주면 어떨까 싶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봐서 재밌고 웃기면 사람들은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끝나면 신명난 마당놀이 한 판 보고 싶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