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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공연 이야기

택시 합승 하실래요? 연극 택시 드리벌

by 매들렌 2022.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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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연극열전 택시드리벌 공연 포스터
2004년 연극열전 공연 포스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극 중 하나

1998년 고3이었던 때, 대전 시민회관에서 극단 새벽이 공연하는 연극 '택시 드리벌'을 처음 관람했다. 택시 드리벌은 택시 운전사라는 뜻의 영어 Taxi Driver를 콩글리시 발음을 섞어 만든, 그러니까 택시 운전사란 의미다. 눈물 나게 웃다가 가슴이 찡했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좀 허탈했던 주인공 덕배의 인생. 이 연극의 매력은 극 중에 등장하는 여러 승객들의 사연을 시대에 맞게 연출자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장진 식 코미디를 좋아한다. 그의 영화도 그렇고, 연극도 그렇고 한 번도 코믹한 부분에서 안 웃은 적이 없다. 그러고 보면 그가 구사하는 웃음 코드가 나와 맞는가 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연극 중 하나인 작품이다. 이것 말고도 그가 직접 쓴 '서툰 사람들'과 '햄릿 리턴즈'라는 작품을 좋아한다.  

 

 

주인공 덕배의 인생살이

개인 택시 한 대를 가지면 출세했다는 말을 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1종 면허를 딴다는 건 그런 성공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의미였다. 빚을 내서 택시를 한 대 장만했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한 투자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덕배는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해 택시를 운전하면서 벼락 출세한 것처럼 기뻐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택시를 운전하면 금방 돈을 많이 벌어서 자리를 잡을 줄 알았건만, 성공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세상에 대해 쌓인 피로와 염세만 남아 있는 덕배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좁은 차 안에 갇힌 채,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오늘이 늘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지난밤의 숙취에서 깨어나질 못하는 승객을 태우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밤의 어둠 뒤에 숨어 끈적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승객을 태우기도 하며, 조폭들을 태우기도 한다.  일상의 무게만큼이나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지키지 못한 연인 '화이'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오며 약속했던 마음과 재회는 빛이 바래버리고 말았다. 덕배는 끝내 연인의 마지막과 자신의 순정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 앞에서 덕배의 현재도 무너져 버린다. 자괴감에 빠진 그는 새로운 사랑에 감히 꿈꾸지 못한다. 

 

택시 안에 남겨진 핸드백을 보면서 덕배는 어쩌면 다시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뚜렷해지는 옛 연인 '화이'에 대한 기억에 섣불리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그의 마음속 여러 생각들이 의인화하여 그를 향해 왁자지껄 설득하는 장면이 명장면이다. 그렇게 오래 고민하다가 핸드백의 주인과 연락이 닿는다. (이하 생략)

 

 

 

K-콘텐츠의 시대를 반영하는 택시드리벌이 궁금하다.

'택시 드리벌'은 서로 다른 시간을 이야기로 잘 버무려놓은 작품이다. 덕배는 분명 지나간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의 삶에 투영된 것은 현재의 우리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택시에 탑승하는 승객들은 하나같이 지금 시대 상을 투영한 인간 군상들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갑질을 일삼는 강남 사모님, 정치와 지역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대립하는 아저씨, 성형수술 때문에 얼굴에 붕대 감은 아가씨, 어깨에 힘이 들어간 어딘가 어설픈 조폭들의 모습 등등 이곳의 일상을 증언하여 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독특한 캐릭터와 재치 있는 대사들을 앞세워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덕배가 가진 마음의 상처와 일상의 고단함도 이 작품이 코믹극으로써의 매력을 잃지 않는 이유다.

 

1998년에 처음으로 관람했던 극단 새벽의 택시 드리벌은 거의 원작 그대로 공연했었다. 그후 두 번째로 관람한 것이 2004년 연극열전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상연된 택시 드리벌이었다. 원작자인 장진 감독이 직접 연출했고 덕배 역할로 정재영 씨와 강성진 씨가 번갈아가며 공연했다. 나는 두 분 것 모두 보았다. 개인적으로 정재영 씨 버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했었다. 발성이 강성진 씨보다 더 좋았고 연기도 훨씬 자연스러웠다. 아무튼 2004년 당시의 사회 상을 반영했었다. 

 

그 후 한 동안, 같은 작품은 두 번 이상 보지 말자라는 나름의 철학이 생겨서 택시 드리벌은 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선가 상연한다면 꼭 보고 싶다. 팬데믹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부산처럼 너무 거리가 멀면 힘들지만 ktx로 4~50분이면 가는 서울 경기권역에서 하는 공연이라면 가고 싶다. 다시 택시 드리벌이 극장에서 상연한다면 우리나라 콘텐츠가 전 지구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것을 택시 승객들을 통해 언급하는 장면이 꼭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비티에스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극작가들이 쓴 연극도 해외에서 공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내가 알기로는 뮤지컬 '명성황후'와 안중근의 일대기를 다룬 '영웅'이 브로드웨이에서 잠깐이나마 공연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연극은 아직 한 작품도 없는 것으로 안다. 요즘같은 때라서 더욱 아쉽다. 물론 영상의 파급력이 무대보다 강력하고 빠른 것은 인정하지만 연극이나 뮤지컬도 라이센스 형식으로 외국에서 공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자면 세계 어느 나라 사람도 공감할만한 보편적인 이야기여야 할 것이다. 영화 기생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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