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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공연 이야기

역동적인 남성들의 전통 춤, 한량무(閑良舞)

by 매들렌 2022.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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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무를 추고 있는 조흥동 예인
조흥동 예인의 한량무

 

한량무의 개요

한량이란, 벼슬에 오르지 않은 혹은 오르지 못한 양반을 일컫는 말로써 풍류를 즐길 줄 알고 의기 있는 사내를 가리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한량들이 놀이판을 펼쳐서 즐겼던 춤을 한량무(閑良舞)라고 한다. 무용극 형태의 한량무의 내용은 한량과 별감이 기생들을 데리고 노는 자리에 승려가 나타나 이 광경을 보고 기생에게 반하여 멋진 춤으로 기생의 환심을 사서 기생이 마침내 한량과 별감을 배반하고 승려에게 간다. 이것은 타락한 선비, 파계한 중, 정조 없는 여인, 게으른 관리들을 응징하는 조선시대의 퇴폐성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춤 장단은 주로 삼현육각의 연주로 중모리, 타령, 굿거리, 자진모리 등의 가락을 이용한다.  한량무는 우리나라 무용극 중 기방에서 연희되었던 최초의 극형식 춤으로 역동성과 남자다움을 간직한 남성 춤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궁중계의 춤도 아니고 순수 민속춤의 영역도 아닌, 교방계 류이 무용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전승설

각 지역마다 한량무와 유사한 춤이 존재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소멸되었고, 경상남도 진주에서만 1979년도에 재연되어 지방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진주 한량무는 양산 권번의 춤 선생이었던 김농주에게 사사한 김덕명(金德明)에 의하여 현재 진주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다. 진주는 예부터 진주 감영의 관아에 교방에서 많이 추워졌다는 기록이 고증 때 정현석의 [교방가요], [진주의암별제지] 등에서 알 수 있으며 이 춤의 유래로는 교방가요의 승무의 내용과 구성이 지금의 한량무와 같으므로 승무의 유래설에 의한 김만중의 [구운몽]을 소재로 삼은 춤이라는 설, 민속 가면의 소무(小巫)와 노장의 대무(對舞), 포도대장과 소무의 애정 장면과도 관련되었다는 설 등에서 그 유래를 볼 수 있다.

 

 

 

한량무의 구성

이 춤은 부패한 양반과 파계승을 풍자한 무용극으로 7인 배역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형태이다. 구성과 배역은 한량을 비롯해서 파계승, 별감, 상좌(上座), 기생 혹은 여인, 주모와 마당쇠가 등장한다. 각 배역마다의 춤사위는 개성미가 뛰어나고 소박미가 있으며 해학적 요소와 무언극적인 요소가 합해진 시대상을 풍자한 춤으로 토속미 또한 넘치게 보여주고 있는 점이 돋보이는 춤이다. 복식과 무구는 한량은 도포를 입고 정자관을 쓴다. 기생 혹은 여인은 궁중여기의 복식으로 몽두리에 색 한삼을 끼고 족두리를 쓴다. 승려는 진회색 장삼에 홍가사를 입고 머리에는 방갓을 쓰고 지팡이를 든다. 상좌와 마당쇠는 하얀색 바지저고리를 입고, 주모는 보통 흰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는다. 별감은 사령복에 전립을 쓴다. 그러나 가끔 한량무라고 하면서 도포에 정자관만 쓴 채 혼자 공연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그것은 무용극 중 한량이 추는 춤만 따로 떼어서 공연하는 것이다.

 

 

 

한량무 보유자 조흥동
조흥동 예인의 한량무

 

 

한량무 전승자 김덕명

1924년 경상남도 양산 출생으로 여덟 살 때부터 범어사와 통도사를 다니며 당시 통도사의 주지인 양대응 스님에게서 양산 학춤, 지성 승무, 바라춤 등 여러 춤들을 전수받는 한편 해인사에서 통도사로 오신 신경수 스님에게도 학춤과 승무를 배웠다. 열 여섯 살에 개성 권번에서 춤을 추었고, 지방마다 옮겨 다니며 솜씨를 발휘해 임방울, 모추월, 김농주 같은 이들의 칭찬을 받았다. 특히 김농주와는 의형제를 맺기도 하였다. 권번에 드나들며 춤과 가락을 배운다는 것을 집안에서 알게 되어 포항으로 가출했다가 얼마 안 되어 붙들여 집으로 돌아와 황민 연성 도장이라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열아홉 살에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권번 생활로 돌아와 황종열과 안화주에게서 양산 통도사의 사찰학춤과 김농주에게서는 신라 장검무, 기생 소고무, 타령, 굿거리, 한량무 등 주로 교방춤을 배웠다. 무형문화재 발굴 작업의 일환으로 양산 사찰학춤 실태 조사를 위해 통도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절들을 찾아다니던 김천흥, 서국영과 만나 공동작업을 벌여 1976년에는 양산 사찰학춤의 무보를 발간하였다. 1979년에 한량무가 경상남도 도지정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이때 한량무를 가르친 제자들과 함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지금까지도 무대에 오르는 등 적지 않은 연령에도 불구하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량무를 추고 있는 김덕명 선생
인간문화재 김덕명 선생의 한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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