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중기 시대를 대표하는 바이올린 소나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마단조 k304는 1778년 프랑스 파리에서 작곡된 모차르트 중기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천재 특유의 분방함과 독창성으로 후원자들과 마찰을 빚었던 볼프강은 1777년, 고향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떠나 연주 여행길에 오른다. 만하임의 하숙집에 머물며 그 집 딸인 일로이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버지의 설득에 못 이겨 9일간의 마차 여행 끝에 파리에 도착한다. 그러나 파리의 청중들은 더 이상 신동 시절처럼 그에게 환호하지 않았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러한 때에 같이 동행하던 어머니가 오랜 객지 생활에 지친 탓으로 병을 얻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어머니를 잃은 슬픔, 사랑하는 일로이자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오랜 객지 생활에서 온 향수병 등이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헤쳐놓고 있었다. 일 년 뒤인 1778년, 여전히 복잡한 마음 상태인 볼프강은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마 단조를 작곡하여 세상에 내놓게 된다.
바이올린 소나타 중 유일한 단조 곡
같은 시기에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번처럼 아련하게 느껴지는 슬프고 애틋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볼프강은 총 마흔 한 개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이 작품은 유일하게 슬픔이 느껴지는 단조 곡으로 쓰였다. 비엔나의 유한계급의 여인들을 위한 딜레탕트적 소나타를 작곡했던 때부터 10여 년이 지나 슈스터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듣고 두 악기가 나누는 대화 같은 진행 방식에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좋게 말해서 '대화'이지, 실제로 모차르트와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시절 바이올린 소나타나 첼로 소나타는 각 독주 악기가 표현하기에 부족한 화성이나 화음을 반주해주는 개념이 아니라 그 반대의 개념으로 쓰였다.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반주해주는 피아노 소나타'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곡 전개 방식이 특징이다. 제목은 바이올린 소나타나 첼로 소나타이지만 실제로 작품 전개 방식을 들여다보면 그렇다. 어쨌든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음의 움직임을 들어보면 신선한 매력을 주며 특유의 파격이나 위트가 없는 대신 긴장과 어둠의 이면이 짙게 깔려 있다.
곡의 구성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우리의 정조 대왕님보다 네 살 어리고, 9년이나 빨리 죽었다.)의 바이올린 소나타 대부분이 런던 풍으로 총 2악장에 론도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나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대등하게 서로의 선율을 연주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코다에서 주제와 동기를 사용하며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식 등에 있어서는 아주 진보한 발전을 보인다. 1악장은 힘찬 악상과 애상스러운 선율이 교차되며 진행하는데 볼프강이 지금 자신의 마음이 이토록 복잡하고 심란하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다. 애조 띤 피아노의 서주가 서정적인 2악장은 트릴이 많은 바이올린의 빛나는 연주가 오히려 단조의 어두움과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슬프도록 아름답다'라는 말을 음악적 언어로써 제대로 보여준다. 남몰래 눈물을 떨구는 모습이 떠오르는 악장이다. 이 바이올린 소나타 마 단조 K304는 만하임에서 작곡을 시작하여 파리에서 완성되었으며, 이 시기 일곱 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린의 역할이 점차 발전되는 시기의 곡들이다. K301에서 K306의 여섯 개의 곡은 1778년 초에 완성되어 푸파르츠 선제후의 부인 마리아 엘리자베트에게 헌정되었고 같은 해 11월에 '바이올린 반주를 지닌 피아노를 위한 6개의 소나타'라는 제목으로 출판된다.
추천 음반과 연주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 음반으로 첫 번째로 꼽히는 것은 바로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클라라 하스킬'의 음반이다. 특히 이 작품의 연주에서 시리도록 투명한 피아노 소리 위에 우수에 젖은 바이올린 소리의 어우러짐이 아주 일품이다. 후대 연주자들의 표본이 될 정도로 기념비적인 연주다.
2022.01.20 - [잡다한 공연 이야기] -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의 생애
두 번째로 꼽는 추천 음반은 '오귀스탱 뒤메이와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음반이다. 느리고 아주 유려한 연주로써 현존하는 최고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인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바이올리니스트 오귀스탱 뒤메이와 함께 풀어 나가는 모차르트는 무한한 아름다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슬픔의 표현은 그뤼미오&하스킬의 연주에 비해서 다소 희석된 편으로 좀 더 모차르트의 슬픔을 격렬하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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