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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공연 이야기

우리나라 궁중 무용에 대해 알아보자

by 매들렌 2022.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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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대무를 추고 있는 모습
연화대무. 고려 때 시작된 무용으로 군왕의 덕에 감격하여 가무로써 그 즐거움을 주러왔다는 내용이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절제를 유지하며 추는 춤

우리나라 궁중무용은 삼국시대 이후 왕권 정치가 확립됨에 따라 그에 맞춰 정해진 왕실의 의식으로 시작됐다. 민중이 즐기던 민속무용과는 대비되는 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궁중무용은 '춤을 비롯한 모든 재능과 기예'라는 의미의 '정재(呈才)'라고도 불린다. 정재는 높은 분께 재주를 받들어 올린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궁중문화의 꽃으로 크고 작은 행사에서 주로 행하여왔다. 

 

 

 

우리나라 궁중무용의 형태

궁중무용은 크게 세 가지 형태 즉, 의식무인 일무당악정재향악정재로 나뉜다. 먼저 일무(佾舞)는 문묘와 종묘 제사에서 추는 춤으로 행과 열을 맞춰 추는 형식의 무용이다. 당악정재는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서 전래된 춤을 의미한다. 죽간자(竹竿子)(정재 때 사용하는 춤 도구)의 인도로 춤이 시작되며 시작과 끝에 한문 가사로 된 창사를 부른다. 향악정재를 발전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 이것은 조선시대에도 향악정재와 더불어 궁중무용의 쌍벽을 이루었다. 

 

향악정재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인 향악에 맞춰 추는 창작 춤으로 조선 세종 이후 체계화되었다. 한문이 아닌 국문으로 된 창사를 부르며 무원(무용수)들은 죽간자의 인도 없이 무대에 올라 춤을 추기 시작한다. 

 

 

 

 

궁중무용의 특징

우리나라 궁중무용은 신라 시대에 들어온 공자의 예악(禮樂)사상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유학이 정치이념으로 자리잡음으로서 궁중무용은 유교의 정치관을 바탕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왕실의 존엄과 위엄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으며 엄격한 형식 안에서 절도와 질서를 중시하는 장엄한 춤사위로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 동양적 색채를 띠는 화려한 복장과 의물(도구)을 사용하며 무용수 개인의 개성이나 감정의 표현은 억제되었다. 담담한 장단의 흐름에 우아한 춤 가락을 지녀 신비스러운 멋을 풍기고, 온화하면서도 장엄한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절제된 동작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는 동안 유지되는 엄숙한 분위기가 평안과 고요를 느끼게 한다. 

국가기관에 예속된 궁중무용은 오랜 역사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의식의 일부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독립하여 지금은 예술적인 춤으로 정착되어 현재까지 전하여 오고 있다.

 

 

가인전목단을 추는 모습
가인전목단. 순조의 아들 익종이 동궁대리로 있을 때 아버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든 무용

 

 

우리나라 궁중무용의 종류 

대표적인 궁중무용으로는 연화대무(연화대라고도 한다), 가인전목단, 춘앵무, 처용무 등이 있다. 

 

<연화대무>

고려시대부터 전해 오는 당악정재 중의 하나다. 조선말기까지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춤이다. 춤의 내용은 봉래에서 내려온 두 여자아이가 연꽃 술로 태어났다가 군왕의 덕에 감격하여 가무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복과 모자를 조촐하게 차린 두 여자아이가 모자에는 금방울을 달아 장단에 맞추어 움직이면 소리가 나게 하고 두 개의 연꽃 속에 감추어둔 여자아이를 꽃이 터진 뒤에야 보이게 하고 있다. 안무가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이 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반주로 쓰이는 음악은 조선 성종 때까지는 오직 당악만을 사용하였으나, 조선 말기에 와서는 향악화된 [보허자령]을 사용하였다. 

 

 

<가인전목단>

조선 말기에 창작된 궁중무용. 향악정재 중 하나다. 순조의 아들인 익종이 동궁 대리로 있을 때 아버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각종 궁중연회 때 추었고 현재까지도 전승되어 오는 춤이다. 춤의 내용은 팔모가 난 소반 위에 삼지화(三枝花)를 꽂은 꽃병을 놓고, 그 둘레에서 여덟 명이 추는데 그 가운데 네 명은 꽃병에 꽂힌 삼지화의 모란을 꺾으며 즐기고, 사이사이에 낀 네 명은 꽃은 꺾지 않고, 춤만 함께 춘다. 꽃을 꺾은 무용수는 원무(元舞)라 하고 나머지는 협무(挾舞)라고 한다. 

 

 

춘앵무를 공연 중에 있는 모습
춘앵무

 

<춘앵무>

궁중무용 중 유일한 독무(獨舞) 작품인 '춘앵무'는 순조 때 효명세자가 순원왕후의 마흔 살 생일을 경축하기 위해서 만든 춤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어느 봄날 버들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꾀꼬리 소리를 들은 후 이를 상징화해 무용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춘앵무'는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을 입고 오색 한삼을 손목에 꼈으며 화관을 머리에 얹은 채 화문석 위에서만 추는 우아하고 단아한 향악 정재이다. 율동미보다는 전통적인 윤리관을 선으로 표현하는 멋을 지닌 춤으로 절제된 느림의 매력을 우아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처용무를 추는 모습
처용무

 

<처용무>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처용무'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춤은 통일신라 시대 처용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춤이다. 어느 날 처용은 사람으로 변한 귀신이 그의 아내와 동침한 것을 발견하였으나 화를 내지 않고 물러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는데 이 모습을 본 귀신이 감동해 처용 형상의 그림만 봐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궁중 나례와 연례에 처용 가면을 쓰고 추던 일종의 무극인 처용무는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약 52종의 궁중무용 가운데 역사적 시원이 가장 오래된 춤에 속한다. 처음에는 독무였으나 이후 5 인무로 확대되어 5방 처용무로 발전한 이 춤은 청ㆍ홍ㆍ황ㆍ흑ㆍ백이 모두 자기가 위치한 방위를 지키며 잡귀의 침투를 감시하는 구도를 지닌다. 남성 무용수들로만 구성되어 추는 처용무는 호방한 성격의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관객에게 절제된 표현 양식으로부터 나오는 힘과 감정을 전달하는 춤이다.

 

 

 

 

전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전통을 문화재로만 대하지 말고 일상에서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다면 굳이 문화재로 지정하고 그 번호를 외우지 않아도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각인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서양 악기보다도 국악기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무척 어렵고 그것은 무용 분야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점도 많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방치하기에는 녹록지 않다. 한복과 김치마저 자기들 것이라며 우겨대는, 겉만 대국이고 속은 빈대보다도 좁은 중국이 버티고 있는 이상, 우리 것을 지키기에 그 어느 때보다 눈에 핏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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