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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공연 이야기

국립 발레단 vs. 유니버설 발레단

by 매들렌 2022.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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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로고
대한민국 발레단의 양대 산맥

 

 

우리나라 발레계의 거대한 양대 산맥

우리나라 발레를 대표하는 두 개의 단체가 있다. 다른 말로는 발레계의 '삼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상위 5%의 실력을 갖춘 무용수들만 입단이 가능할 정도로 굉장히 입사하기 힘들지만 그만큼 자부심을 갖고 춤을 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직업 발레단이다. 

 

 

긴 역사를 가진 국립 발레단

국립 발레단은 1962년 창단된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 발레단으로써 한국 발레 역사의 상징과도 같다. 올해 2022년은 창단된 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60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무용수와 안무가, 훌륭한 예술감독과 작품 덕분에 국립 발레단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국내 최정상의 무용수 60여 명과 세계적인 명작들을 레퍼토리로 보유하고 있으며 정기 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공연을 통해 관객들을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다.

전막 작품으로는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스파르타쿠스>, <라 바야데르>, 파트리스 바르의 <지젤>, 마르시아 하이데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존 프랭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우베 숄츠의 <교향곡 7번>,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 조지 발란신의 <세레나데>, 크리스티안 슈푹의 <안나 카레니나>, 레나토 자넬라의 <마타 하리>등을 연이어 선보이며 클래식 발레에서 모던 발레, 네오클래식 발레, 드라마 발레 등 폭넓은 장르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국립 발레단의 고유의 창작 발레 레퍼토리 개발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각각 설화와 고전시를 배경으로 한 <왕자 호동>, <허난설헌-수월경화>등이 대표작으로 남아 있다. 2019년 5월 발표한 신작 <호이 랑> 역시 한국적 이야기를 서양의 몸짓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국립 발레단이 한국 창작 발레에 대해 수없이 고민한 흔적의 결과물들이다.

 

국립 발레단은 2015년부터 시작된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인 <KNB Movement Series>를 통해 단원들이 무용수뿐만 아니라 안무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다. 이는 신진 안무가 발굴을 통해 무용수 제 2의 인생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회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탄탄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국립 발레단의 레퍼토리 개발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국립 발레단은 발레 대중화라는 큰 의무를 위해 공연 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가는 '찾아가는 지역 공연', '찾아가는 발레 교실'등 크고 작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다양한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편 해외로도 활동 범위를 넓혀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올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단으로서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우수성을 전 세계로 널리 알리는데 기여하고 있다. 현재 단장 겸 예술감독은 강수진 씨가 맡고 있다.

 

국립발레단장 및 예술감독: 강수진 사진
국립발레단장 및 예술감독: 강수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직업 발레단

국립 발레단은 말 그대로 정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있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무용수들과 스태프 및 직원들은 준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급여에서는 공무원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제 소개할 유니버설 발레단은 최초의 민간 발레단이다. '천상의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라는 뜻의 '예천 미지, 藝天美地'를 발레단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1984년 5월 12일 창단된 유니버설 발레단은 제1회 공연이었던 <신데렐라>를 필두로 국내를 비롯하여 세계 17개국 1,800여 회의 공연을 선보이며 한국의 대표적인 발레단으로 성장해왔다. 현재는 영원한 지젤로 불리는 문훈숙을 단장으로 70여 명의 무용수와 40여 명의 스태프가 상주하며 세계 정상의 발레단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세계 발레의 메카, 그 중심에서 진일보하고 있는 유니버설 발레단은 러시아 발레의 화려하고 웅장한 고전 발레 레퍼토리 뿐만 아니라 한스 반 마넨, 이어리 킬리안, 윌리엄 포사이드, 하인츠 슈푀얼리, 오하드 나하린, 나초 두아토, 크리스토퍼 휠든 등 모던 발레 안무가들과의 교류로 레퍼토리를 넓히고 있다. 유럽의 안무가 존 프랭코의 드라마 발레인 <오네긴>을 동양 발레단으로서는 두 번째, 한국 발레단으로서는 최초로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역시 한국 최초로 올려 다시금 드라마 발레의 강자임을 증명했다. 한편 한국 고유의 전통을 바탕으로 한 창작 발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86년 한국 창작 발레 최초의 작품인 <심청>을 제작하였고 그 외 <춘향>과 <발레뮤지컬 심청>을 통해 유니버설 발레단의 독창성 개발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1998년부터 한국발레단으로서는 최초로 해외 투어를 시작하였다. 그중 2001년도 미국 뉴욕 링컨센터, 워싱턴 케네디 센터, LA뮤직센터 공연은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의 극찬을 이끈 기념비적인 공연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1년부터는 창단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월드투어를 실시하여 지금까지 9개국 11개 도시에서 공연했다. 2012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여 한국 발레 최초로 아프리카 입성에도 성공하였다. 월드투어의 주요 레퍼토리인 <심청>은 발레의 본고장인 러시아 모스크바와 파리에 초청되어 전통 발레 강국에 한국 발레 역수출이라는 성과를 얻어낸 발레단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장: 문훈숙의 사진
유니버설 발레단장: 문훈숙

 

 

 국립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

개인적으로 둘 중에 어느 발레단을 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참 어려운 질문이다. 평소 어느 발레단이든 마음이 가는 공연이 올라오면 보는 성향이라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선택할 수가 없다. 선택 장애라고 하여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있다. 그것은 '지젤'도 아니고 (솔직히 이 작품을 보기 전에는 지젤을 제일 좋아했다) 백조의 호수도 호두까기 인형도 아니다. 이미 포스팅한 적도 있는 <왕자 호동>이다. 

 

나는 항상 발레 작품에서 남자 무용수들의 역할 속 한계에 대해서 늘 불만이었다. 이야기 속 역할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도 알지만 늘 여성 무용수의 들러리 혹은 도우미로 여겨지게끔 보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남자 무용수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파워 넘치는 안무의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해적>, <돈키호테>같이 남성이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발레 작품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 척박한 대한민국 땅에서 그런 작품이 흥행을 보장 하지는 못한다. 대중들은 클리셰처럼 여성 무용수가 주인공인 비극적이고 혹은 희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성 무용수는 자신들의 잠재력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역할만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왕자 호동>은 다르다. 여성 무용수와 대등하게 자신의 존재를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역할이고 남성 무용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파워있고 웅장하고 다이내믹한 춤과 군무를 보여줄 수 있다. 게다가 대중들이 좋아하는 클리셰도 들어가있다. 바로 비극으로 끝나는 사랑이야기 이다. 

 

하지만 볼 때마다 안타까웠던 점은 국립 발레단의 남자 무용수의 연기력이다. 의상에서 아쉬운 점은 차치하고라도 남성 무용수의 연기력은 조심스러워도 솔직히 말해야겠다. 상대역인 낙랑공주 역할의 박세은 씨와 이은원 씨는 감탄이 나올 만큼 투명하게 연기를 잘했다. 발레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연기해내었다. (지금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수석 무용수로 있는 박세은 씨 연기를 보다니, 내가 천복을 받았던 건데 그 당시 나는 그걸 몰랐다) 무용수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엄청 잘했으니까 기억하는 걸거다. 반대의 경우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아니다. 그 무용수의 연기에 감정이입이 못했다면 난 그날로 잊어버린다. 

 

남성 무용수의 연기력이 무척 중요한 작품인데도 별로 감정이입이 되지 못했다. 2009년 초연 때 봤고 2014년쯤에 한번 더 보았는데도 남성 무용수는 여전히 기억에도 없다. 마지막으로 <왕자 호동>을 관람했던 날,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남자 무용수를 빌려와서 호동 왕자를 연기시킬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이다. 거기서 한술 더 떠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의 레퍼토리를 바꿔서 해보면 안되나 하는 생각도 해봤다. <왕자 호동>을 유니버설 발레단이 하고 <심청>을 국립 발레단이 하는 걸로 말이다.

 

왕자 호동 vs. 심청

아쉽게도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작 발레인 <심청>을 실제로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이상하게 기회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아예 못 본 것은 아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튜브에 유니버설 발레단이 공연한 <심청>이 올라와 있었다. 공연 예고 영상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어쨌든 한 자리에서 다 보았다. 의상도 아름다웠고 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연기도 괜찮았다. 무대 연출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 씁쓸했던 점은 클리셰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다. 물론 심청이라는 이야기 자체가 그렇긴 하다.  그래도 뭔가 새로움은 보이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국립 발레단의 <왕자 호동>에 더 점수를 주는 편이다. 의상이나 무대 연출이 아쉽지만 그건 자료가 별로 없는 고구려 시대이니까 어느 정도 이해한다. 상대적으로 조선 시대인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이 고증은 더 쉬울 것이다. 조선 시대 자료는 넘쳐나니까 말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에는 기억하는 남자 무용수가 몇 있다. 그 중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엄재용 씨다. 지금은 은퇴했다고 들었다.  현역에 있을 때는 나 혼자한 상상이지만 엄재용 씨가 호동 역할로 춤추는 걸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 보곤 했다. 어차피 현실에선 안 이루어질 것을 알지만, 상상은 자유라는 말이 있다. 

 

조만간 국립 발레단에서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연기력 출중한 발레리노가 등장하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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