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다한 공연 이야기

신분을 뛰어넘은 금단의 사랑, 연극 <미스 줄리>

by 매들렌 2022. 3. 6.
728x90

연극 미스 줄리 공연 포스터
연극 미스 줄리

 

 

연극 <미스 줄리>의 주인공인 '줄리'는 연극 역사상 가장 손에 꼽히는 여주인공 중에 하나이다. 강인해 보이다가도 한없이 약하고 도발적이면서 머뭇거린다.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가 줄리를 '반(半)하는 여성'이라고 소개했듯이, 그녀는 사회적 관습에 대항해 자신을 남성과 평등한 주체로 여긴다. 전통적인 성 역할을 전복한 이 여성 캐릭터의 등장은 스웨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게다가 신분 차이를 넘어선 정사 장면은 당시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었다. 결국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미스 줄리>는 스웨덴에서 16년간 상연이 금지된 작품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무대에 올려지는 현대 연극의 대표작이 되었다.

 

 

 

줄리는 어떤 여자인가

줄리는 내려가고 싶다. "가끔 꾸는 꿈이야. 내가 기둥으로 올라가 앉았는데 내려갈 길이 없어. 아래를 보면 현기증이 나고, 내려는 가야겠는데, 뛰어내릴 용기는 없고, 그래도 계속 거기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 내려가길 바라지만 그것도 안돼. 하지만 난 알지, 내려가야 평화가 있다는 걸 말이야. 땅으로 내려가야 휴식이 있어."

 

장은 올라가고 싶다. "전 어두운 숲 속, 높은 나무 위에 누워 있는 꿈을 꿉니다. 꼭대기로 올라가 햇빛 찬란한 경치를 보고 황금알이 담긴 새집을 훔쳐보고 싶어요. 그래서 자꾸 올라갑니다. 하지만 나무는 너무 굵고 미끄럽고 첫 번째 가지는 너무 높습니다. 그것만 잡으면, 사다리처럼 쉬울 텐데요."

 

줄리는 백작의 딸이고 장은 그 집의 하인이다. 줄리는 자기 신분이 내려가기를 꿈꾸고, 장은 올라가기를 원한다. 줄리는 자신의 구두에 입 맞출 것을 요구하고 장은 마지못해 명령에 따른다. 견고했던 이 둘의 관계는 하룻밤의 정사로 관계가 뒤바뀐다. 신분 계급은 줄리가, 육체적 관계는 장이 높다. 장은 동경하던 여인을 손쉽게 정복한 남자처럼 줄리를 함부로 대한다. 줄리는 명령을 내리면 장에게 복종하겠다고 매달린다. 줄리는 자신의 여성성을 장은 자신의 계급을 벗어던지고 싶어 한다. 둘은 혼란 속에서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인다. 이상과 현실, 계급과 성별, 선과 악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면서 작품은 서서히 비극으로 치닫는다. 

 

 

 

 

미스 줄리의 아버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스웨덴 출신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1849-1912)는 1888년 희곡 <미스 줄리>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 한 여류작가가 면도칼로 목을 긋고 자살한 사건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의 성장 배경에서 <미스 줄리>와의 교집합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지체 높은 가문의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하녀였다. 하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귀족 출신 배우와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대를 이어 신분과 계급을 넘어서는 사랑을 경험했던 자전적 경험이 이 <미스 줄리>에 녹아들어 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가난과 방치의 유년시절을 보낸 스트린드베리는 늘 결핍된 사랑에 목말라했다. 세 번 결혼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여인 속에서 천사를 찾으려고 했지만 지옥만을 발견했다'는 그의 말은 결코 괜히 나온 것이 아닌 삶이었다.

 

 

 

 

미스 줄리의 방

원작인 <미스 줄리>의 극본을 우리말로 아름답게 윤색하고 연출까지 도전한 연극배우 리다해 씨가 여주인공 줄리 역할을 맡았다. 하인인 장 역할은 대학로에서 20년 가까이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연기로 사랑받고 있는 배우 고훈목이 출연하고 하녀 크리스틴 역할은 탄탄한 기본기와 깊이 있는 연기로 인정받고 있는 배우 임영란이 맡아 열연하는 중이다. 마인드커리지그룹의 줄리의 리빙룸에서 세 번째로 제작, 기획한 연극인 이 작품의 음악은 영국에서 수학하고 일렉트로닉스, 국악 관현악, 게임 음악(배틀그라운드) 등 다양한 장르에서 각광받고 있는 장석진 씨가 작곡을 맡아 작품의 시대적 갈등과 모순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게다가 연극영화과 입시생들이 꼭 읽어봐야 하는 작품으로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세 분 모두 처음 알게 된 배우들이다. 그리고 말로만 듣고 대본으로만 보던 그 연극, <미스 줄리>가 무대화되었다고 하니 꼭 보고 싶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