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과 가슴이 맞닿고 서로 안은 채 걷는 춤
브라질에 삼바, 스페인에 플라멩코가 있다면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춤이다. 가슴과 가슴이 맞닿고 서로 안은 채 걷는 춤이다. 원어 발음으로는 '땅고'에 가깝다. 리드와 팔로우로 이루어지며 상하체 분리와 시간차를 이용하여 다양한 발동작이 이루어진다. 리드와 팔로우 사이로 오가는 에너지와 커넥션이 핵심이 된다. 또한 음악이 굉장히 중요하다. 뮤직칼리티로 불리어지는 음악에 대한 해석이 안무의 핵심이다.
탱고의 유래와 형식
1910년대 아르헨티나 보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나 만개한 곳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이다. 특징적인 것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만 탱고가 흥했지, 아르헨티나의 다른 지역으로는 잘 퍼지지 않았는 사실이다. 인구 밀집 지역에서 밤새 춤추고 놀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치안이 보장된 도시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도시 문화에서 만개한 사교 춤이다.
또한 '밀롱가'라는 탱고 전용 무도장이 따로 형성되어 있고, 공연이 끝나면 공연 전문 무용수들도 일반 탱고인들과 어울려 밤새 춤추고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대개 밀롱가는 분위기를 주도하고 관리하는 오거나이저와 음악을 틀어주는 디제이의 이름을 걸고 운영된다. 특히 디제이는 따로 워크샵을 개최하고 유명한 디제이는 국제 페스티벌에 초청되기도 한다. 그만큼 디제이가 중요하다. 춤추는 사람들의 컨디션과 기분을 음악으로 조절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디제이란, '이쯤에서 이 음악이 나왔으면...'이라고 생각했을 때 마치 독심술사처럼 그 음악을 틀어주는 마술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으로 고정 파트너가 없는 것이 대부분이며, 밀롱가에 앉아 있다가 아는 사람들끼리 추거나 서로 모르더라도 눈빛을 주고받는 까베세오라는 인사를 나누고 즉석에서 커플이 되어 탱고를 춘다. 대개 3~4곡을 한 묶음으로 추며 그 묶음을 '딴다'라고 부른다. 한 딴다가 끝나면 탱고가 아닌 다른 곡이 잠깐 나오며 그때 서로 고맙다고 하고 들어오면 된다. 그때 나오는 다른 곡을 꼬르띠나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탱고인들도 딴다와 꼬르띠나 문화가 자리잡기 전까지는 주구장창 한 사람만 붙잡고 돌았지만 지금은 다들 칼같이 지켜진다고 한다.
춤추다가 '고맙습니다' 혹은 영어로 'Thank You'라고 말하면 그만 추자는 뜻이다. 전설적인 땅게로(탱고를 추는 남자)이자 무용수인 까를로스 가비또가 한 여성과 춤을 추었는데 한 곡을 추고 난 뒤 그 여성이 너무나 기분이 좋아 고맙다고 말했더니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까지 안내해주었다고 한다. 외국 밀롱가에서 즐길 때 상대가 엉망이 아닌 이상은 절대 고맙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즉흥적으로 추는 춤
탱고는 안무가 미리 짜여져 있는 춤이 아니라 파티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다. 물론 공연을 위해 파트너끼리 안무를 짜서 연습해 공연을 하는 에세나리오(무대 위에서 공연을 위해 추는 탱고) 같은 분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탱고는 즉흥이다.
탱고를 즐기는 사람들
2-30대 젊은 층이 많은 살사나 스윙보다는 즐기는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살사나 스윙이 특유의 손으로 하는 리드, 즉 소위 손맛과 함께하는 격렬한 움직임이 주가 된다면 탱고는 가슴을 맞대고 서로를 안은 채 깊은 커넥션과 교감을 통한 걷기를 위주로 한다. 젊어서 살사나 스윙을 즐기다가도 나이가 들면 격렬한 움직임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다거나, 젊은 층 위주의 분위기에 나이가 들어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탱고로 넘어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춤판에서 탱고는 '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탱고는 격렬함이 주지 못하는 깊은 커넥션과 따뜻한 포옹 그리고 정교한 걷기에서 오는 매력이다. 어쩌면 '춤의 무덤'이라는 표현은 탱고가 그만큼 깊은 매력이 있고 춤에서 얻을 수 있는 매력의 마지막 단계라는 뜻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탱고라고 하면 생각나는 것은 중년의 남녀가 춤바람이 나서 으슥한 밀실에서 블루스와 함께 땡겨주는(?) 춤이지만,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사교댄스 학원이나 문화센터에서 탱고를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 남성 비율이 90%의 수강생들이 듀오로 탱고를 연습하고 있다.
탱고의 음악과 악기
탱고는 1800년대 말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 선착장에 전래된 아바네라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하바네라는 쿠바에서 유행하던 2/4박자의 가요 조 음악인데 여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서 유행하던 칸돔베(우루과이의 대중음악)가 합쳐져 빠른 리듬에 맞추어 추는 2박자의 밀롱가가 되었다. 이 밀롱가가 변형된 것이 바로 오늘날의 탱고라는 것이다.
탱고에는 타악기가 없다. 이것이 탱고 음악의 매력이자 비밀 중 하나인데 보통 밀롱가를 가도 1920-30년대 황금기에 악단들의 음악만을 틀어댄다. 누군가 탱고를 추기로 결심했다면 평생 거의 비슷한 때로는 같은 음악들을 주구장창 들으면서 춤을 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타악기의 부재이다. 같은 선율을 리듬으로 쓸 것인지 멜로디로 쓸 것인지는 추는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정하고 또 같은 음악에 춤을 추더라도 본인의 컨디션과 기분, 파트너와의 교감, 실력, 그날의 밀롱가와 론다의 분위기와 수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것이 변수가 되어 작용하기에 질리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다.
탱고의 유행
탱고가 유행하자 탱고 가수들도 생겨났고 인기 있는 탱고 가수들을 기용한 영화까지 나오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탱고 가수는 까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다. 이 사람은 흔히들 '여인의 향기'라고 알려진 유명한 영화의 주제 음악인 'Por Una Cabeza'를 작곡한 인물이다. 사실 그가 인기를 끌던 1900년대 초반만 해도 탱고는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소비형 대중문화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1921년에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태어난다. 현대 탱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아졸라는 "탱고는 발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귀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탱고 음악을 단순한 춤곡이 아닌 당당한 음악 장르의 한 축으로 키워내게 된다. 유명한 곡으로는 1950년대 작곡한 리베르 탱고(Libertango)가 있다. 피아졸라가 반도네온을 연주하고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한 이 곡의 1988년판 연주가 유명하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는 천재 피겨 스케이터에 의해 유명해진 곡인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가 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는 뜻으로 지어진 이 곡이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트 부문 여자 싱글에서 대한민국 선수인 김연아의 프리 프로그램 음악으로 사용되어서 인기를 끌었다. 리베르 탱고 또한 피겨 스케이터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탱고에 관한 여담
댄스스포츠 스탠다드(모던) 종목 중 탱고가 있는데, 이 탱고는 위에서 설명한 아르헨티나 탱고와는 이름만 같은 개별 댄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르다고 한다. 기본 박자 카운트부터 아르헨티나 탱고는 6보/8보를 기본으로 하는데 댄스스포츠의 탱고는 6보를 SQQS로 쪼갠다. 스텝과 피겨는 물론이며 사용하는 음악조차도 그대로 쓸 수 없어 어느 정도 편곡을 거쳐야 하며 한쪽을 배운 사람도 곧바로 다른 쪽을 출 수가 없다.
아르헨티나 탱고는 걷기와 상호 호흡을 중시하는 4박자의 '땅고'와 회전과 미끄러지듯 걷는 스텝을 중시하는 3박자의 '발스', 그리고 땅고의 기원이었던 2박자의 '밀롱가'로 나뉜다. 탱고 음악 역시 춤에 따라 장르가 나뉘며 보통 탱고 바에서는 음악을 틀어주는 탱고 DJ나 라이브 밴드가 같은 장르의 곡 3개를 묶어 '딴다'를 구성하여 틀어주거나 연주한다. 하나의 딴다는 보통 3~4개의 곡이 연속적으로 틀어지는데 탱고는 4곡, 발스와 밀롱가는 3곡이 일반적이다.
아르헨티나에 탱고를 보러 간다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라 보카와 같은 관광지의 길거리에서 호객 영업을 하면서 보는 탱고, 밀롱가와 같이 보통 사람들부터 전문 탱고 댄서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와서 같이 춤추는 곳, 탱고를 전문으로 보는 교습소, 탱고 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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