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발레의 걸작
발레 <오네긴>은 알렉산드르 푸쉬킨(1799-1837)의 장편 소설인 '예브게니 오네긴'을 원작으로, 드라마 발레의 대가인 존 프랑코(1927-1973)가 안무한 작품이다. 쿠르트 하인츠 슈톨제가 차이코프스키의 작품 스물여덟 곡을 편곡해 발레 음악으로 재창조했다고 한다. 196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세계 초연했으며 영국 로열발레단,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볼쇼이 발레단, 라 스칼라 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발레 <오네긴>은 드라마 발레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드라마 발레란, 연극적인 내용의 발레를 지칭하는 용어로써 옛 소련에서 많이 만들어졌고, 서구에서는 1960년대 이후 완전히 스타일을 확립하게 된 장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라마 발레라는 용어가 일반화 되었지만, 국제적으로는 '드라마틱 스토리 발레' 또는 '드라마틱 발레'란 표현이 주로 사용된다. 발레는 소설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간다. 병적으로 자존심 강한 젊은 귀족 오네긴과 그를 사랑하는 순진한 여인 타티아나의 엇갈린 안타까운 사랑을 그린다.
오네긴과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
■ 1막
ㆍ오네긴과 타티아나의 만남 : 도시의 귀족 청년 예브게니 오네긴은 친척 어른의 영지를 물려받아 막 시골을 방문한다. 라린 대령의 작은 딸 올가와 약혼한 친구, 블라디미르 렌스키와 함께 그는 라린 가(家)를 방문한다. 올가는 약혼자 렌스키와 행복을 만끽하는 반면, 올가의 언니인 타티아나는 내성적이며 책 읽는 것만을 즐긴다. 라린 대령의 집 정원에서 타티아나 자매와 시골 처녀들은 거울 속에서 미래의 신랑 얼굴을 찾는 놀이를 한다. 올가가 거울을 들여다보자, 렌스키가 나타나 거울 속에 얼굴을 내밀고 그 모습을 본 올가는 기뻐한다. 이번에는 타티아나가 거울을 들여다보자, 렌스키와 함께 온 오네긴이 장난으로 얼굴을 내밀어보고 타티아나는 깜짝 놀라고 만다. 타티아나는 잠시 오네긴과 산책을 하게 되고, 세련된 도시 청년 오네긴에게 흠뻑 빠지게 된다. 하지만 오네긴은 그녀가 읽고 있던 로맨스 소설책을 보고 웃을 뿐이다.
ㆍ타티아나의 편지 : 그날 밤, 침실에서 타티아나는 오네긴에게 열정적인 사랑의 편지를 쓴다. 첫사랑의 환상에 푹 빠진 그녀는 거울 속에서 나타난 그의 환영과 춤을 춘다. 다음날 그녀는 유모를 통해 그 편지를 오네긴에게 보낸다.
■ 2막
ㆍ타티아나의 영명 축일 : 얼마 후 타티아나의 영명 축일에 오네긴이 초대받는다. 그러나 그에겐 시골 사람들이 모인 파티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타티아나의 열정적인 사랑 편지도 유치할 뿐이다. 자신이 보낸 편지를 면전에서 찢어버리며 망신을 주는 오네긴의 모습에 타티아나는 크게 상처받는다. 짜증이 난 오네긴은 심심풀이 삼아 올가에게 구애하는 것처럼 굴며 친구인 렌스키에게 도발하고 화가 난 렌스키는 그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ㆍ오네긴과 렌스키의 결투 : 두 사람의 결투를 타티아나와 올가가 말리려고 하지만, 결국 헛된 결투에 렌스키는 목숨을 잃고 오네긴은 도시로 돌아간다.
■ 3막
ㆍ상트페테르부르크의 무도회 : 몇 년 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오네긴은 그레민 공작과 결혼하여 공작부인이 된 타티아나를 무도회에서 발견하고 놀란다. 오네긴은 시골 아가씨이던 옛날과 달리 화려한 사교계의 중심에서 기품있고 명망이 높은 타티아나에게 흠뻑 빠져버린다. 그는 시골에서 그녀를 만났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ㆍ타티아나의 방 : 편지를 보내 열렬히 구애하는 오네긴의 태도에 타티아나는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그가 타티아나의 방으로 찾아온다. '회한의 춤'이라고도 불리는 마지막 파드되(2인무)에서 두 사람의 회한과 이중적인 감정이 드러나고 결국 타티아나는 오네긴의 편지를 그의 앞에서 찢으며 구애를 거절한다.
작품의 특징
화려한 군무나 시각적인 눈요기보다는 주인공들의 감정 변화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커다란 미덕은 대사 없이 간단한 동작과 표정만으로도 주인공들의 감정을 오롯이 관객들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뇌하면서 하늘을 훔치는 동작을 반복하고, 눈은 저 먼 곳을 응시하는 오네긴은 이상을 꿈꾸는 몽상가다. 또 매사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냉소하는 표정을 짓는 그는 무척이나 자의식이 강한 인물로도 보인다. 반면, 타티아나는 꿈꾸는 듯한 표정과 부드러운 동작 등을 통해 상냥하고 선한 인물임을 짐작케 한다.
1막에서 나오는 거울 파드되(2인무)와 3막에 등장하는 회한의 파드되가 이 발레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모두 오네긴과 타티아나가 추는 2 인무인데, 1막에서는 오네긴을 향한 타티아나의 일방적인 사랑이 중심이라면 3막에서는 그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역전된다. 특히 3막 엔딩 장면에서 보여주는 타티아나의 단호하고 강렬한 동작은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겨준다. 일종의 사이다와 같은 카타르시스의 감정이다.
모든 어긋난 사랑을 위로한다
3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네긴의 열렬한 구애가 담긴 편지를 그의 면전에서 찢어발기는 타티아나의 행동이 통쾌하기도 하고 묘하게 위로가 돼 주기도 한다. 한편 발레 <오네긴>의 경우, 국내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공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4년 발레리나 강수진(현 국립발레단 단장 및 예술감독)씨가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그때 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서 보러 가지 못했다. 다행히 아마존에서 이 작품의 DVD를 직구할 수 있었다. 썩 마음에 드는 공연은 아니었지만 오네긴이라는 작품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은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2009년 이후부터는 유니버설 발레단이 무대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최근이었던 2020년에도 이 작품을 무대로 올려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때도 나는 보러 가지 못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여행도 식당도 마음 놓고 가지 못했던 때이다. 그런데 오는 10월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유니버설 발레단이 <오네긴>을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만 방역 패스도 완화되었으니 이번에는 꼭 보러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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