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
오늘날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D) 장조 작품 35번은 전도유망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있어 하나의 비르투오조 명함과도 같다. 뭐든 묶어서 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베토벤, 멘델스존, 차이코프스키)안에 들어가는 유명한 곡이다. 웅장하고 파워 있는 오케스트라 파트는 영화와 텔레비전에서도 자주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하면 잘 모르지만 오케스트라 파트를 들려주면 금방 "아, 이 음악!" 하고 알아차린다. 마찬가지로 같은 작곡가의 피아노 협주곡 도입부도 웅장함으로 인해 대중매체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지금은 연주회장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에서도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이는 곡이지만 처음 작곡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는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다.
헌정자에게 무시당한 작품
이곡은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 가운데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지만 결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베르크의 협주곡들이 누렸던 지적인 명예나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찬사를 결코 받지 못했다. 이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비교적 가벼운 듯한 자극, 예컨대 분위기의 상쾌한 전환, 강렬한 자극, 관능적인 아름다움, 춤추는 듯한 흥겨움등 때문에 이곡은 언제나 미심쩍은 눈길을 받아왔다. 또한 차이코프스키의 또 다른 작품들의 경우에 있어서 연주자는 생색을 내는 듯한 태도로 이곡을 연주하곤 했다. 그가 이 곡을 헌정했던 당시 최고의 바이올린 교사였던 레오폴드 아우어 역시 이 작품을 신선한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이 곡을 테크닉적으로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이상한 핑계를 대며 초연을 거부했고 전혀 바이올린 답지 않은 곡이라며 악보조차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에 화가 난 그는 비록 항의 한번 하지 못하고 물러났지만 다시는 아우어에게 작품을 헌정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위해 그가 작곡한 작품이 이 협주곡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그날 거절당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1878년 3월과 4월에 걸쳐 완성했지만 1881년이 될 때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그의 금고에 처박혀있었다.
초연자 아돌프 브로드스키
바이올리니스트 아돌프 브로드스키는 1851년 3월 21일 남부 러시아의 타간로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어머니는 훌륭한 아마추어 가수였고 아버지는 절대 음감의 소유자였다.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쥐어주고 조율해 준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그의 첫번째 바이올린 선생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지역 군악단 출신의 음악가였다. 1875년 그는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의 조교수가 되었다 그는 또한 지휘자로도 활동했는데 1879년에서 1881년까지 키예프에서 교향곡 연주회 지휘봉을 잡았다.
1880년에서 1881년 겨울, 그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여행했다. 그리고 파리로 떠났다. 독주회와 현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내심 바라고 행한 일이었다. 파리에서 그는 스페인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를 만났고 생상과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생상은 진심으로 이 젊은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를 돕고자 했다. 그들은 부유한 후원인, 영향력 있는 음악가, 연주회 기획자들의 집을 다니며 연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이미 2년 전에 작곡했지만 그때까지 연주된 적은 없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마치 운명처럼 접하게 되었다.
비엔나 초연 이후
평소 존경하던 레오폴드 아우어에게 자신의 작품이 거절당하자 차이코프스키는 몹시 괴로워했다. 그는 매우 실망했고 이 작품을 종종 '불행한 아이'라고 칭하곤 했다. 아돌프 브로드스키는 차이코프스키의 이 협주곡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이 작품을 빈에서 초연해주겠다고 그와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켰다. 브로드스키의 친구인 한스 리히터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위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브로드스키를 지원했다. 그는 1881년 12월 4일에 리히터의 지휘로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을 초연했다. 그날 청중들의 반응은 분노의 고함과 야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혼합된 것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비판은 가혹했다. 비평가 에두아르트 한슬릭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말 고약하다고 느끼게 되는 음악이라면서 이 곡을 듣고 우리는 귀에 거슬리는 음악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 비평에 큰 상처를 받았지만 어쨌든 초연 약속을 지켜준 브로드스키에게 차이코프스키는 항상 감사해했다. 차이코프스키는 개정에 착수하여 두번째 에디션은 브로드스키에게 헌정했다. 브로드스키는 이후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지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연주했다. 그 후 이 작품은 바이올린 레퍼토리를 위한 하나의 초석이 된다. 레오폴드 아우어가 처음에 겁먹었던 상당한 수준의 테크닉적 요구보다 이곡이 지닌 순수한 향취가 더욱 부각되어 많은 연주가들, 특히 젊은 연주가들은 뛰어난 음악적 장애물 경기라 할 수 있는 이 곡을 앞다투어 연주하게 된다.
작곡 배경
차이코프스키가 바이올린 협주곡에 착수한 것은 그의 나이 38세 때였다. 그보다 1년전 그는 끔찍했던 결혼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는데, 절망감에 사로잡힌 그는 자살을 기도한다. 결국 의사의 권유에 따라 그는 러시아를 떠나 각국을 여행하기로 한다. 스위스의 휴양지로서 제네바 호반에 있는 클라렌스에서 동생인 아나톨과 함께 체류하는 동안 그는 차츰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된다. 이곳에서 교향곡 4번과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의 악보를 완성한 그는 다시 이탈리아로 향한다. 그가 상쾌한 기분이 되어 이탈리아에서 귀국했을 때 요제프 코테크라는 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의 방문을 받는다. 그는 브람스의 친구인 요아힘의 제자이자 그의 새로운 후원자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의 친구였다. 그들은 함께 수많은 신작을 연주하곤 했는데 그중에서 그의 관심을 끈 것은 프랑스 작곡가인 에두아르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이었다. 이 곡은 화려한 음색을 지닌 협주곡 양식으로 된 바이올린 작품이었다. 랄로의 작품과 코테크의 방문,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의 휴양,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감 등에 고무된 그는 자신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코테크는 바이올린 파트의 작곡을 도와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로 하여금 테크닉의 극한을 요구하는 부분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작품의 초고에 대해서 코테크와 작곡가의 동생인 모데스테는 특히 생기발랄한 1악장과 3악장에 매혹되고 만다. 초고의 2악장은 나중에 다시 쓰이는데 그것은 나른한 분위기를 제공하는 칸조네타로 휴지부 없이 3악장으로 이어진다. 관현악 편성은 1878년 4월 11일에 마무리되었다. 후원자인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새로 쓴 2악장 안단테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으며 이제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우어에게 심한 퇴짜를 당하자 차이코프스키는 코테크로부터 성 페테르부르크에서 이 협주곡을 초연하겠다고는 약속을 받는다. 그러나 이곡이 혹시 자신의 연주 경력에 흠을 내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한 코테크는 마침내 약속을 어기게 되고 이로 인해서 차이코프스키와의 관계는 영원히 끝난다.
오늘날의 위상
차이코프스키 사후, 테크닉적으로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퇴짜 놓은 이 곡이 점차 널리 자주 연주되자 레오폴드 아우어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곡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곡에 나오는 연주 테크닉은 쉬운 것들이 아니다. 영혼 없이 연주하면 노래는 없고 테크닉만 들리게 되는 곡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세기를 넘어서도 이곡을 꾸준히 연주해왔다. 아우어의 제자인 야샤 하이페츠부터가 이곡을 탁월하게 연주해내었고 크라이슬러, 밀슈타인, 오이스트라흐, 메뉴인으로부터 꾸준히 연주와 녹음되어왔고 우리의 사라 장(장영주)은 여섯 살 때 이곡을 완벽하게 연주했다. 바이올린스럽지도 않고 테크닉적으로 연주가 불가능하다던 아우어의 말이 무색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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