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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공연 이야기

텔레만 <식탁 음악>, 봄을 만끽하며 즐기는 식사

by 매들렌 202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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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아침 식사

 

1732년, 바로크 시대 작곡가 텔레만(George Philipp Telemann, 1681-1767)은 이듬해에 출판될 자신의 <Musique De Table>의 악보 구입을 미리 신청하라는 광고를 시작한다. 프랑스어 '무지크 드 따블르'는 독일어 '타펠무지크, Tafelmusik', 영어의 '테이블 뮤직'과 같은 뜻으로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문자 그대로 <식탁 음악>이다. 

 

 

식탁 음악이란 무엇인가

무슨 음악이기에, 또 당시 얼마나 인기가 많았기에 악보 출판 1년 전에 예약 광고를 시작한 작곡가 텔레만의 음악마케팅 결과까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는 수천 곡에 달하는 아주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특히 그의 <식탁 음악>은 바로크 식탁 음악의 최고봉이자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식탁 음악'이란 궁정이나 대부호의 저택에서 열리는 연회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편안한 식사를 위해 제공되었던 음악으로 오늘날 표현으로는 일종의 BGM(Background Music), 배경음악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식탁 음악'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중반부터이고 연회에 음악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관습은 고대 이집트에도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중요한 연회나 결혼예식에 가수와 음악가가 필수요소가 된 것은 17, 18세기 때였다. 실제로 볼로냐의 한 음악회에서는 루트 연주자와 하프 연주자에게 "귀한 손님들이 점심 식사를 하는 동안 아주 매력적이고 멋진 춤곡으로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의무로 요구될 정도였다. 사실 음악회가 사교나 단순 유희의 장(場)을 벗어나 요즘과 같은 정숙한 분위기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형태의 음악회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텔레만이 살았던 시대로부터도 백 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나 가능했다. 

이런 이유로 점차 연회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졌던 식탁 음악도 춤곡 모음곡으로 변하였고 18세기 후반에는 디베르멘토(디베르멘토, Divertimento)로 그 장르가 바뀐다.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시절의 많은 음악이 실제 내용상으로는 '식탁 음악'이었다. 그러나 텔레만처럼 대놓고 '식탁 음악'을 제목으로 붙인 작곡가는 드물었다.

 

 

텔레만의 생애

게오르그 필리프 텔레만은 바흐와 헨델보다 4년 먼저 태어난 독일 작곡가다. 죽은 후 오랫동안 역사에서 잊힌 바람에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살아 생전에는 그 인기가 바흐를 넘었으며, 20세기 들어 재평가된 후 지금은 바흐와 비견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는 바로크 음악의 또 다른 거장이다. 그는 독일 마그데부르크의 목사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요한 마테존과 함께 법학을 공부했지만, 뒤늦게 음악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라이프치히에 머물고 있던 1702년, 그는 콜레기움 무지쿰이라는 대학생 음악 단체를 설립하여 여러 음악 활동을 열었고 1704년에는 당시 대학 교회였던 라이프치히 새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한다. 1705년, 조라우(Sorau) 궁정의 음악감독이 된 텔레만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식탁 옆에서(bey der Tafel)" 즉, "식사 시간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음악가 텔레만의 초기 이력은 <식탁 음악> 연주회를 이끌거나 식탁 음악용 작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후 1717년, 아이제나흐의 음악감독직을 맡았을 때도 다양한 "일상적인 식탁 음악"을 제공해야 했다.

이후 함부르크에서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던 시절(1721-1767년)에는 거의 매년 개최되는 특정한 연회를 위해 식전에는 오라토리오를, 식사 중에는 세레나데를 연주해야 했기에 이를 위해 그가 1723년부터 40여 년 동안 작곡한 "식탁 음악용" 오라토리오-세레나데 세트는 무려 36개에 달할 정도였다. 당시 궁정에 고용된 작곡가였던 텔레만에게 주어진 임무는 식사나 사교모임의 분위기를 살리고 흥을 돋울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것이었지, 순수하게 감상용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으니 아예 대놓고 <식탁 음악>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보게 된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식탁 음악을 가벼이 여겼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전체 3집으로 이루어진 그의 <식탁 음악>이 경쾌하고 가벼운 성격의 곡들이 주종인 것과 각 작품당 90분 상당의 연주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것은 코스 요리에 어울리는 발상일 듯싶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크 음악의 종합 전시장"이라 평가받을 만큼 관현악 합주, 4 중주곡, 협주곡, 독주곡 등 아주 다양한 기악곡 장르의 음악들이 매우 다채로운 색채를 띠고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텔레만은 함부르크 오페라단에서 1738년까지 정열적으로 일했고, 죽을 때까지 함부르크에서 악장을 지냈다.  

 

식탁 위의 식사

 

말년에도 텔레만은 쉬지 않고 음악을 만들어 내었다. 바흐가 말년에는 거의 작곡을 하지 않았던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1750년은 그의 나이가 70세인데, 이후에 쓰여진 작품들이 오히려 전보다 더욱 창의적인 작품이 많다. 1760대에도 그는 쉬지 않고 음악을 만들었다. 생애 마지막 무렵에 손자를 돌보다가 86세의 고령으로 폐렴으로 사망했다.

 

 

총평

텔레만은 음악 출판의 경제적 가치를 인지한 선구적인 인물이었다고 전해지는 만큼, 당시에 수요가 많았던 '식탁 음악'을 아예 제목으로 사용함으로써 경제적 실익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실제로 무려 185명이 200부 이상의 악보를 사전 예약한 그의 <식탁 음악>의 큰 성공은 두 번째 아내가 남기고 간 도박 빚 청산에 많은 보탬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그의 <식탁 음악>의 인기는 독일, 덴마크,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귀족이나 왕족뿐만 아니라 당시에 활동하던 음악가들에게도 높았다. 그의 악보 사전 구입 예약 명단에 작곡가 헨델도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더욱이 헨델은 <식탁 음악> 가운데 일부를 18번이나 자신의 음악에 사용했다는데, 이는 당시의 관행으로 표절은 아니기도 했고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텔레만이 오히려 이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초목의 성장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싱그러운 5월에 음악과 함께 봄을 만끽하며 즐기는 가까운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상상하면서 참 재미있는 제목을 가진 그의 <식탁 음악>을 알아보았다. 유튜브에 이 작품의 훌륭한 연주가 많이 올라와 있으니 감상해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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