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만으로는 안된다
박다울은 보기 드문 거문고 연주자다. 나는 국악 관현악단이나 국립 국악원 소속 거문고 연주자들 빼고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거문고 연주자는 거의 보질 못했다. 가야금으로 연주회(독주회)를 개최하는 가야금 연주자들은 꽤 보아왔지만, 거문고는 거의 못 봤다. 내가 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 경험이 맞을 듯하다. 일상에서 접하기 어려운 국악이지만 가야금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제법 많다. 거문고는 그 반대다. 가야금보다도 더 접하기 어려우니 자연스럽게 연주자도 많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황병기 선생의 활약으로 가야금은 가장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국악기로 급부상했다. 나는 전에도 말했지만 거문고에서도 황병기 선생 같은 뛰어난 연주자 및 작곡가가 나와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참으로 희망적 이게도 거문고에 젊고 실력 있는 새로운 연주자가 등장했다. 거문고 연주자로 살아남으려면 거문고만으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만 29세의 젊은 청년, 박다울 씨다.
2022.02.22 - [음악] -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전통 악기, 거문고
밴드 KARDI 멤버이자 전통 거문고 연주자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은 최근 문화계에서 가장 핫한 사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JTBC 슈퍼밴드2 출연 당시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신에 동아 콩쿠르 대상 및 KBS 국악 대경연에서 장원이라는 화려한 이력으로 주목받았다. 전통 악기에 현대 음악을 접목한 자작곡으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것이다. 연주 중간에 돌연 거문고 줄을 끊어버리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가 하면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하여 음을 차례차례 쌓아 나가며 거문고도 재미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방송 출연으로 결성된 밴드 KARDI 멤버로서 콘서트와 앨범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거문고 연주자로 전통 음악을 알리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박다울은 슈퍼밴드 2 출연 이후로 깨닫게 된 점은 엔터테인먼트 시장과 순수 음악 시장의 차이란다. 같은 거문고 연주 영상이지만 전통 음악 연주와 현대 음악 연주의 조회수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며 대중의 시각도 더 신경 쓰게 됐다고 한다. 예술과 엔터 사이의 합의점을 찾는 것이 당장 그가 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전통음악 연주자로서의 박다울
작년 인사동에서 무더기로 발굴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점과 주야 겸용 시계인 '일성정시의'를 바탕으로 그가 직접 작곡한 <뿡>이란 작품은 예술과 엔터 사이에서의 합의점에 대해 많은 고심을 한 작품이다. <뿡>이란 제목은 출토된 활자 중에 있던 글자를 제목으로 따왔다고 한다. 그는 출토된 금속 활자를 당대에 어떻게 읽었는지 그 어떤 기록도 없는 상태에서 한글인데 소리내보니 중국어처럼 들렸다고 한다. 드라마, 음식, 의복 등에서 무엇이 우리 것인지 중국과 갈등이 이어지는 작금의 상황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단다. <뿡>의 작곡 의도는 이 작품이 듣는 음악으로 끝나지 않고 기록으로의 역할을 하길 바랐다고 말한다. 땅 속에서 수백 년 전의 글자가 나왔는데 아직까지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었다면서 무언가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알기 쉽지 않은 요즘 세상에서 조그마한 활자 하나하나를 자세히 보기에는 정보가 너무 많고 시간이 굉장히 빠르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은 마음으로 곡을 썼다고 한다.
거문고를 품은 슈퍼 밴드 KARDI
카디(KARDI)는 거문고를 품은 밴드다.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강한 개성과 에너지를 뽐내어 '전 세계를 돌아다닐 밴드'라는 찬사를 들었다. 카디만의 대체불가한 음악을 만들어 가겠다는 당찬 포부도 가지고 있다. 이 그룹은 워낙 색이 뚜렷하고 독특해 일찌감치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비록 최종 결선에서는 종합 3위를 했지만 (올림픽으로 치면 동메달 감) 길게 오래가겠다는 카디의 생각은 확고하다고 한다. 김예지(보컬), 황린(기타), 베이스(황인규), 드럼(전성배)에 거문고까지 다섯 명의 멤버들은 각자의 음악 인생을 살며 개성을 갈고닦아왔고 마침내 슈퍼밴드에서 만나 팀이 되었다.
거문고는 밴드의 특색이자 숙제였다. 거문고가 많은 이목을 끌었지만 밴드에서 활용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점은 모험이었다. 특히 멤버들은 거문고 소리가 1000%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에 입을 모아 아쉬워했다. 전례가 없었던 탓에 거문고 음향이 의도대로 듣는 이들에게 가닿지 않았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박다울은 개인 공연에서는 두 시간 가까이 음향을 조율하는데 경연이라서 그렇게 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황린은 빨리 단독으로 공연해서 제대로 들려주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박다울이 너무 독특한 거문고 사용법을 선보인 덕에 원래의 거문고가 뭔지 멤버들은 헷갈린다고 한다. 그의 모습은 말 그대로 강렬했다. 거문고를 타악기처럼 두들기는 모습, 그렇게 두드려서 만들어낸 비트를 루프 스테이션에 입력해 곡의 기초를 만드는 모습, 그 위에 같은 방법으로 박자와 연주를 더해 곡을 층층이 쌓아가는 퍼포먼스, 거문고 현을 칼로 끊으며 타악기로 쓰겠노라고 선언하는 그의 모습은 놀라움과 신선함을 넘어선 경지였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이름이 '거문고의 대중화'다. 나도 구독을 누르려고 검색해보았다. 반갑게도 거문고 연주법도 강의하고 있었다. 아무튼 박다울의 거문고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황병기 선생의 모습을 본다. 그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 같다. 그가 생각하는 것은 거문고의 대중화로써 그 자신이 거문고로 먹고살 수 있게끔 하는 생계가 걸린 문제이다. 그에게는 '미궁'(가야금 연주곡) 같은, '미궁'을 넘어서는 파격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 것이 카디 활동에서 나올 수 있을지 흐뭇하게 지켜보련다.
'잡다한 공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상을 만나는 한국의 파가니니,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0) | 2022.03.19 |
---|---|
핫한 안무가들과 국립무용단의 케미스트리, 더블빌 (0) | 2022.03.18 |
지옥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비극, 오델로-죄 (0) | 2022.03.16 |
대전 스프링 페스티벌X모다페 프로젝트 - 안무가 전미숙 (0) | 2022.03.14 |
우리가 몰랐던 붓다의 생애, 뮤지컬 싯다르타 (0) | 2022.03.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