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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공연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전통 악기, 거문고

by 매들렌 2022.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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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
'술대' 라는 막대로 줄을 튕겨서 소리 내는 거문고

 

우리의 전통 악기, 거문고

거문고는 가야금, 해금, 아쟁과 함께 우리나라 전통 현악기다. 거문고는 순우리말이며 한자로는 현학금(玄鶴琴), 또는 현금(玄琴)이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에서 제작한 대표적인 악기이자 남북국 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내내 지식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악기로 웬만한 선비들은 교양으로 거문고를 연주했을 정도였다. 옛 중국 고전에서 나오는 금 또는 슬이라고 표기한 악기를 대부분 거문고로 번역하는 것을 보아도 옛날의 거문고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착각하기 쉬운 것이 거문고가 중국 악기인가 하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거문고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고구려가 만든 우리의 전통 악기가 맞다.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는 현지화식 번역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가야금이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국악기이지만 사실 가야금은 기생들이 기거하던 기방에서 자주 연주하던 악기였다.


거문고의 역사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거문고가 신라 삼현 중 하나라고 설명하면서 신라고기(新羅古記)를 인용하여 거문고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약 4세기 무렵, 중국 진나라 사람들이 고구려로 칠현금(七絃琴)을 보내줬는데 아무도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 이 악기를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 상을 주기로 한다. 이때 왕산악(王山岳)이라는 사람이 고구려에 맞게 새롭게 현지화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학교에서 거문고 하면 왕산악이라고 외웠고 거문고의 명연주자인 줄만 알았지, 악기 자체를 만든 사람인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왕산악이 거문고를 연주하자 하늘을 날던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 하여 이름을 현학금이라고 하였다. 이후 현금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으로 보아 '거문고'는 현금이 순우리말로 전해 내려오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5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고구려금 또는 고려금이란 이름도 아닌 고구려에서 직접 붙인 고유한 이름이 작명 유래와 함께 순우리말 그대로 전해질 정도면 어지간한 인기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만 하다.

거문고가 생긴 뒤 1-2세기 이후 만들었거나 어쩌면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을 수도 있는 가야금 또한 가야에서 직접 붙인 고유한 이름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전하여 내려오는 것이 없다.


가야금과의 차이점

그렇게 오랜 세월 인기 만점이었던 거문고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는 가야금에 인기를 빼앗긴 형국이다. 가야금보다 거문고가 훨씬 연주하기 까다로운 점도 있지만, 내 생각에 故황병기 선생 같은 파격적인 천재 연주자가 거문고에서는 나오지 않은 것이 가장 주효한 것 같다. 황병기 선생은 전통 악기인 가야금을 작곡에서 연주까지 현대화시키는 데 앞장섰던 선구자였다.

만약 왕인이 살아있었다면 그에게 대상과 공로상을 주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거문고에서도 명연주자가 있긴 하다. 대표적으로 한갑득, 신쾌동 등이 있지만 이들은 오직 전통의 틀 안에서 뛰어난 연주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가야금의 황병기 선생처럼 전통의 틀을 지키면서 현대에 맞게 창작하거나 때로는 전통에서는 없던 파격적인 연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본다.

두 번째는 가야금은 손가락으로 직접 현을 뜯거나 튕기면서 소리를 내지만, 가야금은 술대라는 대나무로 만든 작은 막대로 줄을 튕기면서 소리를 낸다.

세 번째는 가야금보다 거문고의 줄이 훨씬 두껍다.
네 번째는 가야금은 기본 12줄이며 현대화된 가야금은 25줄도 있지만, 거문고는 기본 6줄을 고수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연주 시 악기 놓임이 다르다. 가야금은 연주자의 시야에 똑바로 놓는데(청중이 볼 때 가야금 옆면이 보인다), 거문고는 앞을 향해 약간 세워(15도 각도) 놓고 연주한다.

여섯 번째는 농현의 위치가 다르다. 농현이란 서양 현악기 연주 기법 중 하나인 비브라토와 비슷하다. 가야금의 농현 위치는 안족에서 10-15㎝ 떨어진 곳에서 줄을 누르는데, 거문고는 줄을 앞으로 밀거나 그렇게 민 줄을 다시 당겨서 농현을 한다.

일곱 번째는 가야금은 안족이 12개가 있고 이것을 좌우로 움직여 음높이를 조절한다. 반면 거문고는 괘(왼손으로 짚어서 음높이를 조절한다)가 16개, 안족이 3개이다. (아래 그림 참조)

여덟 번째는 가야금은 소리가 가늘고 높은 편이며 맑고 화려한 느낌이지만 거문고는 깊고 굵고 웅장한 음색을 띤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활로 그어 소리를 내는 아쟁이 서양 악기인 콘트라베이스라면, 거문고는 첼로라고 할 수 있겠다.

아홉 번째는 악기의 현대화이다. 내가 알기로는 가야금에 비해 거문고는 악기 개량에 매우 소극적이다. 2천 년대로 넘어와서 가야금은 팝송과 클래식도 연주했고 비보이와 같이 공연도 하고 tv 광고도 찍었는데 거문고는 여전히 전통 그대로 진흙 속에 묻혀 있다.

열 번째는 악기의 대중화 정도다. 거의 모든 국악기가 서양 악기에 비해 일상에서 접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가야금은 그나마 잘 찾아보면 배울 수 있는 곳이 꽤 있다. 그러나 거문고는 황당할 정도로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 심지어 국악원이라는 곳에서도 가야금 수업은 있어도 거문고 수업은 없었다. 도대체 거문고 연주자들은 어디서 거문고를 접하고 배웠는지 그들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거문고의 구조

 

내가 좋아하는 우리의 전통악기, 거문고

가야금 소리를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거문고 소리는 가야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고급스러움' 이 있다. 이게 무슨 멍멍이 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거문고 소리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어디서든 듣긴 했지만, 그것이 거문고 소리인지 한 번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거문고 소리를 좋아하게 된 것은 무용 콩쿠르에서 흘러나오던 배경음악을 들은 후였다. 가야금인 듯 가야금 아닌 깊은 소리에 이게 무슨 악기인가 싶었다. 정확히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네이버에서는 그 소리가 거문고 소리라고 알려주었다. 나로서는 첫 귀에 반한 소리였다. 그 후로는 한동안 유튜브에서 거문고 연주만 지겹도록 찾아서 들었다.

황병기 선생 같은 천재 연주자가 거문고에서도 배출된다면 그리고 악기도 좀 더 현대화가 된다면 옛 영광을 되찾을 수도 있겠지만 요원할 뿐이다. <거문고 팩토리>라는 거문고 연주자들이 모여 그룹을 이룬 연주단이 있다. 거문고의 대중화를 표방하여 결성되었지만 내가 볼 땐 아직도 멀었다.

가야금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2천 년대 후반, 거문고를 약간 개량한 '담현금' 도 이재화 교수가 선보였다. 하지만 거문고라는 악기 자체가 태생적으로 가진 한계가 분명하여 가야금처럼 자유롭게 개량화하기는 조심스럽다고 한다.

악기 자체가 개량하기 쉽지 않다면 거문고의 천재 연주자가 나타나기를 바랄 수밖에는 없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황병기 선생도 애초부터 개량된 가야금으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연주를 하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열 두줄의 전통 가야금으로 어마어마한 족적을 보여주셨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 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조짐도 얼마 전에 있었다. 슈퍼밴드라는 모 방송사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다울이라는 젊은 거문고 연주자가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내 예상대로 거문고 소리를 처음 들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가야금 소리보다 더 좋다고 말했다.

내가 볼 때 거문고는 진흙 속에 묻혀있는 다이아몬드 같다. 이 다이아몬드를 진흙 속에서 꺼내 줄 수 있는 그런 연주자를 오늘도 기다리고 있다.

거문고 연주
거문고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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