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다한 공연 이야기

다시 보고 싶은 발레 작품, 국립 발레단 <왕자 호동>

by 매들렌 2022. 1. 11.
728x90

국립발레단 창작 발레 왕자 호동의 한 장면
국립발레단 창작 발레 '왕자 호동'

 

 

 

국립 발레단이 창작한 <왕자 호동>

이 작품은 2009년 국가 브랜드화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 아래 제작된 발레 작품이다. 라이벌 단체인 유니버설 발레단의 창작 작품 <심청>만큼이나 국립 발레단 자체 레퍼토리로써 인기가 많다. 이야기의 원천은 삼국사기 고구려 대무신왕 편에 나오는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설화이다. 적이 침략하면 스스로 소리를 내는 신비한 북, '자명고'를 둘러싼 호동과 낙랑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발레로 표현한 작품이다. 전체 2막으로 구성되어 있고 고전적인 감성에 현대적인 테크닉이 조화를 이루는 화려하고 웅장한 작품이다.

 

 

호동과 낙랑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 1막 : 고구려 군이 수만 대군을 이끌고 낙랑을 침입하지만 전설적인 북, 자명고 덕에 낙랑은 고구려 군을 모두 무찌르             고 승리하게 된다. 전투에서 패한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제천의식을 행하고 하늘의 계시를 받아 호동 왕자에게               낙랑군을 쳐부수라는 명을 내린다. 대무신왕의 부인이자 호동의 계모인 원비는 호동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며             유혹하지만 호동은 그녀의 애정을 거부하고 그의 호위무사들과 함께 옥저를 유람하기 위해 떠난다. 유람하는

           도중 옥저에서 열린 사냥대회에 출전한 호동 일행은 길조인 하얀 사슴을 잡아 낙랑군의 최리왕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는 호동 일행을 낙랑군으로 초대하고 여기서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는 처음 만나게 된다. 첫눈에 반한               호동과 낙랑은 사랑의 서약을 맺고 낙랑국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 2막 :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아름답고 격정적인 첫날밤을 보낸다. 이들의 결혼 소식을               전해들은 고구려의 대무신왕과 원비는 크게 진노하여 호동을 고구려로 불러들인다. 결국 호동은 고구려로 떠나             고 낙랑은 하루하루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 호동의 빈자리를 노리는 필대장군의 낙랑을 향한 간절한 구애 따             위는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한편 호동은 낙랑을 쳐부술 계획을 세우면서 낙랑에게 자명고를

           찢으라는 밀서를 보낸다. 사랑과 애국 앞에 고민하던 낙랑은 결국 자명고를 찢고 이를 알게 된 최리왕은 진노하             여 딸 낙랑 공주를 칼로 베어버린다.

 

 

잊지 못할 장면들

2009년 초연 당시에 관람했고, 2013년인가 2014년쯤에 한번 더 관람했다. 두번 째 관람했을 때는 내용이 조금 수정되어있었다. 초연 때는 2막의 첫 장면이었던 초야 장면을 1막 마지막 순서로 바뀌었다. 

 

보통 발레 작품들 속 발레리노들은 이야기 속 역할의 한계 때문에 발레리나들이 춤출 때 받쳐주기만 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뒤에서 받쳐주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만 어쨌든 그런 편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왕자 호동>에서는 그런 발레리노에 대한 편견을 모두 불식시켜준다.

 

발레리노 또한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기에 남성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하고 파워있는 검무 장면과 사냥 장면들이 그런 편견을 없애준다. 이 작품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호동과 낙랑의 초야 즉, 첫날밤 장면이다. 뭐라 표현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수준 높은 에로스를 발레로 구현한 최초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살짝 힌트를 더 준다면 수위는 꽤 있는 편이니 알아서 상상하시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전혀 천박하거나 외설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초연 때는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수정된 두 번째 공연에서는 말로는 그 느낌을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밖에도 호동을 그리워하는 낙랑이 슬퍼하는 장면과 비극의 강도가 섬세하게 표현되는 자명고를 찢어달라는 호동의 밀지 장면, 그리고 무려 28명이나 되는 남성 발레리노들이 한 무대에서 뿜어내는 파워 있는 군무와 결혼 피로연에서 각 부족들의 특성을 지닌 다양한 축하무(舞) 또한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작품의 명장면들이다.

 

 

 

아쉬웠던 점

이제야 밝히는데 제일 먼저 호동 왕자의 의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떤 자료를 참고하고 의상을 제작했는지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중국풍으로 보인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 활 쏘는 기마병들의 복장을 참고한 것일까. 난 잘 모르겠지만 자꾸 중국풍으로 느껴져 눈에 거슬린다는 점이다.

 

또 하나, 두번째 공연을 같이 본 판소리 하는 내 친구가 한 말인데 여기서 안 할 수가 없다. 검무 장면과 사냥 장면에서 무대 연출이 너무 중국풍 일본풍이라는 것이다. 장군 의상도 중국과 일본을 섞어놓은 듯했다. 대체 의상 고증은 받지 않은 것인지 아무리 자료가 많이 없는 고구려라고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의상과 무대 연출 그대로 이탈리아에서 공연했던 것인지 상상만 해도 아찔했었다. 기사를 뒤져보니 내 예상이 틀린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충격받았던 이유는 의상 디자이너가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작품에 어떻게 외국인을 의상 디자이너로 고용할 수가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우리나라 이야기인 만큼 의상도 할 수 있는 한 철저하게 고증을 거쳐 제작하기를 바라고 연출도 좀 더 우리 고유의 색채가 드러나게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만 수정하면 나머지는 100점 만점에 100점을 더 보태주고 싶은 작품이다.

코로나19와 오미크론 때문에 집콕이 길어지는 요즘,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작품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