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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공연 이야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by 매들렌 2022.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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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초상화
Ludwig von Beethoven (1778-1827)

 

 

루드비히 폰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작품 중 하나로 8번 비창 소나타, 23번 열정 소나타와 더불어 3대 소나타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특히 잔잔한 분위기의 1악장은 베토벤의 작품 중에 가장 인기가 높은 곡 중 하나이며 그 덕분에 월광이라는 부제를 얻었다. 특히 영화에서 보름달이 뜨는 스산한 밤 분위기나 정신 착란이 일어나는 장면 혹은 점점 미쳐가는 사람들의 배경음악으로 많이 쓰인다. 한 마디로 미스터리 하거나 공포 분위기, 우울감이 증폭되는 장면에서 자주 들린다.

 

 

 

작곡 배경

베토벤은 1792년 그의 나이 스물 두살 때 빈(Wien)에 온 후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이자 촉망받는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특히 그는 피아노 즉흥 연주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덕분에 귀족들의 연회나 사교 모임들의 초청 연주자로 자주 참석하였다. 그의 즉흥 연주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도였다는데, 예를 들어 피아노 협주곡 3번(op.37)의 경우 초연 직전까지도 피아노 부분의 악보를 거의 완성하지 못하게 되자 실제 초연에서는 피아노 부분을 즉흥 연주로 대신하였을 정도였다.

 

이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그러한 작곡가 본인의 즉흥 능력을 활용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1801년에 완성된 이 소나타는 "환상곡풍으로(Quasi una Fantasia)"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작품 번호 27의 두 소나타 가운데 두 번째 곡(op. 27-1)이다. 이 소나타는 같은 표제가 붙어있는 피아노 소나타 13번 E♭장조 op.27-1과 마찬가지로 1악장이 전통적인 소나타 양식 대신 즉흥곡(또는 환상곡)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13번 소나타의 1악장은 론도 형식을 갖추고 있고 나름 주제의 변화와 전개가 나타나지만 이 월광 소나타의 1악장은 진정한 즉흥곡의 의미에 걸맞게 구성의 묘미보다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정서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1악장의 낭만성은 21세기의 대중들에게도 상당한 호소력이 있어서 여전히 식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피아노를 치는 남자와 그것을 듣고 있는 소녀
피아노를 치는 남자와 감상하는 소녀

 

한편 베토벤이 이 작품을 음악을 사랑하는 눈 먼 처녀를 위해 썼다거나 빈 교외 귀족의 저택에서 달빛에 감동하여 썼다거나 연인에 대한 이별의 편지 차원에서 작곡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책에 이런 내용들이 많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월광(月光, Moonlight)이라는 부제는 베토벤 자신이 붙인 이름이 아니다. 그가 사망하고 5년이 지난 후인 1832년, 베를린의 음악평론가이자 시인이었던 렐슈타프가 1악장의 분위기가 달빛이 비치는 스위스의 루체른 호수 위의 조각배 같다고 묘사한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정작 베토벤 본인은 생전에 이 작품에 대한 작곡 배경에 대해 특별히 언급한 적이 없다. 따라서 세간에 떠도는 이 작품의 작곡 배경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를 모두 근거가 없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보면 소나타가 작곡될 당시, 베토벤의 상황은 상당히 우울했다. 베토벤은 1798년경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청력장애가 시작되었으며 이 월광 소나타가 작곡된 1801년에는 귓병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고 연인이었던 귀차르디와의 연애도 여자쪽 집안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1802년, 자살할 생각을 하고 유서를 썼을 정도였다. 따라서 이 소나타의 낭만성은 아름다운 서정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이 처한 불행에 대해서 멀리 벗어나 위안을 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후대의 평가

베토벤은 자신이 가장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악기인 피아노를 주로 음악적 실험으로 수행하고 독창적인 어법을 창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했는데 그 대표격인 작품이 바로 이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다. 

 

이 작품은 그의 다른 피아노 소나타들, 특히 발트슈타인 소나타나 열정 소나타,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와 같은 다른 유명한 소나타들처럼 각종 실험과 파격으로 당대의 음악 문법에 도전했던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감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둔 양상을 띤다. 

 

처절하게 혹은 철저하게 자신의 감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이 견고한 구축력과 어려운 음악어법의 대명사인 그에게도 이렇게 감수성이 충만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에 의의가 크다.

 

그의 작품 중에 작곡자의 감성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출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이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일종의 드문 레어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의 비창 소나타와 마찬가지로 베토벤이 살아있던 시절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은 출판되자마자 당대의 가장 중요한 연주 레퍼토리로 즉각 떠올랐으며 많은 연주자들과 피아노 애호가들이 앞다투어 이 작품의 악보를 구하려고 난리를 피워댔다고 한다. 

 

특히 가장 유명한 1악장의 인기는 21세기인 현재까지 따라올 작품이 드물 정도다. 여러 영화에서도 삽입곡으로 등장했을뿐더러 드라마, cf광고 배경음악 심지어 휴대폰 벨소리로도 제작될 정도다. 문제는 1악장만 뚝 떼어내서 애용하니, 작품의 진정한 가치가 망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1악장은 들어서 알아도 2악장이나 3악장을 들려주면 이것이 같은 월광 소나타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이 '월광'이라는 부제에 문제를 제기한 점이 있었다. 누가 제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월광'이라는 부제는 렐슈타프 개인의 감상평임에도 불구하고 이 제목이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1악장의 해석이 오로지 '달빛'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분명 일리있는 지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월광이라는 부제가 유명해진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는 뜻인데 잘못됐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결국 어느 쪽 의견이 맞느냐는 개인의 판단이 맡기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전자 쪽 의견에 더 마음이 간다. 오히려 나는, 이 작품을 들을 때 작곡할 당시 그의 심경을 더 헤아려보는 쪽이다. 달빛이라는 심상만으로 해석이 닫혀버리면 작곡가 베토벤의 감수성을 배제하는 꼴이다. 

 

 

 

추천 음반

개인적으로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 1884-1969)의 연주와 데카 음반사에서 발매된 백건우 선생님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집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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