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다한 공연 이야기

현대인의 초상,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by 매들렌 2021. 12. 30.
728x90

연극 Tribes 공연 포스터
Tribes by Nina Raine

 

 

관람 포인트

부족 본능 - 우리는 어느 부족(Tribes)에 소속되어 있는가? 왜 부족인가?

개인에게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부족은 인종, 종교, 지역 등 어떤 것에든 기반을 둘 수 있다. 가족 또한 그 구성원들이 믿는 것, 그들의 문화, 그들의 언어를 그대로 전수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하나의 '부족'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어떻게 태어나든 자신이 소속된 공동체의 신념과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대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불협화음 - 우리는 진실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언어가 난무하지만 사실은 진실한 소통이 부재한 한 가족을 통해 '듣기'에 대한 의미 있는 고찰을 시도하는 작품이다. 공동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소통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모든 개개인들에게, 이 작품은 결코 명확한 답안지를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은 비로소 수많은 '잘못된 소통'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비난과 비판이 난무하는 논쟁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그들만의 작은 제국.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누구보다 지적이고, 지나치게 폐쇄적인 가족들이 다시 한 집에 모였다. 자신들만의 언어와 유머, 그리고 규칙들을 가지고 있는 가족 안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자라온 빌리는 자신이 청각장애인임을 신경 쓰지 않는 가족들 사이에서 오늘도 침묵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수화를 배워본 적 없고,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고 읽는 것으로만 의사소통을 해야 했던 빌리는 청각을 잃어가고 있는 실비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를 통해서 청각장애인들의 '들을 수 없는 세계'를 접한 빌리는 수화를 배우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불편하게 속해 있던 '들을 수 있는 세계'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되는 '들을 수 없는 세계'사이에서 방황하던 빌리는 수화가 아니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가족들 앞에서 선언한다. 들을 수 없기에 늘 들어줄 수 밖에 없었던 빌리, 그가 침묵을 깨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등장인물

크리스토퍼 - 빌리의 아버지. 언어에 집착하는 학술 비평가. '네가 소수자들의 세계에 속하게 되는 걸 원치 않았어.'

베스  -  빌리의 어머니. 추리 소설 작가. '왜 종교를 믿으면 안 돼? 무서운 세상이잖아. 어떤 집단에 속하면 살기가 편해.'

다니엘  -  빌리의 형. 언어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학생. '이 집에서 자식들에게 주는 건 가학적인 사랑뿐이지.'

루스  -  빌리의 누나. 오페라 가수 지망생. '우리 집은 가족을 위해 귀찮은 일은 절대 안 해.'

빌리  -  청각장애인. '나는 이 가족의 마스코트예요. 그건 가족이 아니죠. 난 내가 이 집 식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실비아  -  청력을 잃어가는 수화통역사. '결국엔 아무 소리도 안 들릴 거예요. 지금은 그냥 부정하는 단계인 거죠.'

 

 

나는 어느 부족(Tribes)에 속해 있는가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2014년 초연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인 배우 남명렬 씨와 이 작품을 통해 제51회 동아연극상에서 최연소 신인 연기상을 거머쥔 이재균이 다시 출연하고, 그 외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합류했다. 연출가 박정희 씨가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연출을 맡았고, 여신동 아트디렉터가 미술감독으로 새롭게 합류하여 초연의 깊이에 세련된 미장센을 더해졌다. 개인적으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연극이지만 2022년 한 해를 새롭게 여는 국립 정동극장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하고 있다. 줄거리를 읽어보니 예전에 KBS2TV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라는 개그 코너가 생각났다. 청각장애인은 없었지만 흡사 청각장애인처럼 가족끼리 진솔한 대화도 없었고 서로 자기 말만 하는 상황을 비틀어서 개그 작품으로 만들었다. 영국 극작가 니나 레인은 '곧 태어날 아이가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나길 바란다.'는 한 청각장애인 부부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족이란 그 구성원들이 믿는 것, 그들의 문화, 그들의 언어를 그대로 전수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하나의 부족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원제목은 부족, 종족, 집단이라는 의미의 Tribes 였지만, 국내에서는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나는 진실로 부모님과 형제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진실로 소통하고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다음 달에 막이 오르면 꼭 보고 싶은 연극 작품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