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다한 공연 이야기

그들의 논쟁에 참여해보았다 - 연극 라스트세션

by 매들렌 2022. 2. 7.
728x90

연극 라스트세션 관람표 사진
연극 라스트세션 관람표

 

상상으로 만나는 프로이트와 루이스의 논쟁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혼란의 역사 속 전운을 뚫고 만난 두 지성인. 프로이트가 사망하기 3주 전, 흥미로운 마지막 논쟁이 시작된다. 20세기 무신론의 시금석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20세기 대표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 이제껏 이 두 사람보다 더 탁월하게 자신의 입장을 옹호한 사상가는 없었다. 신과 종교,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한 재치 있는 논변들이 쏟아진다. 빈틈없는 논리로 치열하게 맞서는 두 지식인의 대결! 두 사람의 지성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생생하게 무대 위에서 재현되었다.

 

 

관람 후기

7년 전에 관람했던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에서 신구 선생님의 무대 연기를 가까이 볼 수 있었다. 감히 내가 그분의 연기력을 평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손숙 선생님의 연기에 더 감정 이입되었다. 신구 선생님은 자꾸 사랑과 전쟁 속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목소리와 딕션이 겹쳐서 감정이입에 방해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연세도 많으신데 언제 또 가까이서 연기하시는 걸 보겠나 싶어 관람했던 연극이었다.

 

그런데 이번 '라스트세션'에서는 신구 선생님이 아닌 오영수 배우님 버전을 선택했다. 나름 연극 공연장을 많이 찾아가서 관람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영수 선생님이 출연한 연극을 관람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연극이 시작되고 그분의 연기가 시작될 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언제인가 어릴 적 TV에서 방영해주었던 연극 - 무슨 스님들이 나온 - 이 기억났다. 그것은 국립극단이 제작한 이만희 극작가의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였다. 거기서 도법스님 역할로 나온 배우가 바로 오영수 배우님이었다! 왜 그런 사실이 갑자기 생각났는지는 모르나 예상치 못한 새로운 흥분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 프로이트만 알고 있었지, 루이스란 작가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무신론자이고 루이스가 유신론자인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신은 있다, 없다로 시작해서 사랑과 전쟁에 대해서도 논쟁을 한다. 체감 분량으로 봐서는 신의 존재에 관한 논쟁에 비해서는 적은 분량이지만 말이다. 둘의 치밀한 논박을 듣다 보니 중간에서 듣고 있는 관객들은 졸지에 황희 정승처럼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개인적으로는 신을 믿는 유신론 자이지만 프로이트가 내뱉는 말을 듣고 있자니 그의 논리에 동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인간성을 상실한 전쟁으로 평가받는 2차 세계 대전 때, 신은 대체 어디 있었을까. 죄 없는 유대인이 희생당하고 있을 때 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다섯 살 밖에 안된 손자 녀석도 홍역으로 죽었고 스물일곱 살 먹은 프로이트의 딸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단 한 마디 설명도 없이 데려갔느냐고 울부짖는다. 그는 끝까지 무신론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인간은 이 우주에서 자기 혼자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데 다들 그만큼 성숙하지 못하니까 신이 있다고 떠드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루이스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신이 너무 했다는 생각은 하지만 신이 없으면 어떡하느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은 결국 믿느냐 믿지 않느냐일 수도 있는데 그건 프로이트의 말대로 '선택'의 영역이라고 한다.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 사실 논쟁이라는 것이 어떤 결말을 내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 루이스 작가는 집으로 돌아가고 프로이트는 그 며칠 후 사망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은 이 우주에서 혼자다라는 생각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고 설파하셨던 붓다의 교리와 맞닿아있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그렇다고 아예 같다고 동의할 수는 없었다. 오영수 배우님의 무대 연기는 감히 평하자면 과장된 연기를 과장됨 없이 자연스레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제대로 된 배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생을 국립극단 소속 배우로서 연극을 해 오신 분으로서 당연한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연기력은 경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극장은 소극장이라고 들어서 객석이 몇개 없을 듯 예상했지만 예상외로 꽤 많았다. 게다가 가파르기까지 하여 나는 맨뒤에 있는 객석이 앉아서 봤는데 무대를 내려다볼 정도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극장이 아니라 중소극장 아니 중형 극장 정도는 되어 보였다. 연극 상연이 끝나고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조금 추운 날씨임에도 대학로를 여기저기 걸어 다녔다. 2년 만에 와본 대학로는 굉장히 많이 바뀌어 있어서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무슨 대학교 공연예술센터가 꽤 많이 들어서 있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와 봤을 땐 없었던 새로운 극장도 꽤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미어졌던 2년 전을 생각하면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었고 거리는 활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