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다루는 인도 이야기
라 바야데르(La Bayadere)는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라는 뜻이다. 무희(舞姬)는 춤추는 여성 무용수를 의미한다. 서양 춤으로 대표되는 발레에서 드물게 다루는 인도 이야기이다. 무희, 장군, 공주, 승려의 사각관계(!)를 그리고 있다.
작품 개요
발레의 블록버스터로 불리는 작품이다. 출연진 인원도 많은데다가 이국적이고 화려한 무대 장치 및 의상 등으로 인해 제작비도 많이 소모되며 군무 장면이 많아 안무 난이도도 높은 편이다. 발레계 역시 매우 까다로운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서차영 발레단이 초연을 했고 뒤이어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 발레단에서도 무대에 올렸다.
스토리는 단순하고 통속적인 편에 속한다. 그래서 지젤과도 비슷하다는 평도 많다. 특히 지젤을 이미 본 사람이라면 3막을 감상할 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모든 단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드라마틱한 전개와 이국적이고 화려한 무대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그런 점에서 흥미 있고 공연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백조의 호수나 지젤과는 달리 매우 러시아적인 발레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실제로 현재 공연되는 모든 버전의 원형은 1940년에 키로프(현재 마린스키)발레단에서 초연된 바흐탕 차부키아니의 버전이다. 라 실피드,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지젤, 코펠리아 같은 작품들이 '서유럽 스타일'의 발레라고 한다면 라 바야데르, 바흐치사라이의 샘, 사랑의 전설, 스파르타쿠스, 파리의 불꽃 등은 서양의 발레 스타일과 의도적으로 차별되게 만든 러시아 스타일의 발레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가 만든 러시아 스타일의 발레인데 이야기는 인도 이야기이니 참 아이러니하다.
작품 속 인도 이야기를 들어보자!
<1막>
배경은 인도. 용맹한 장군 솔로르와 사원의 무희 니키야는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카스트 제도라는 신분제에서 최고로 높은 계급인 승려 브라만도 니키야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고백하지만 니키야는 거절한다. 솔로르와 니키야는 신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고 그 모습을 본 승려 브라만은 질투로 솔로르를 죽이겠다고 마음먹는다. 한편 라자 왕은 솔로르를 자신의 딸인 공주 감자티와 결혼시키려 하고 솔로르는 왕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공주와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브라만은 라자 왕에게 솔로르와 니키야의 관계를 일러바치고 라자 왕은 솔로르가 아니라 니키야를 죽이겠다고 결심한다. 브라만과 라자 왕의 대화를 듣고 공주 감자티는 돈으로 니키야를 회유하려 하지만 먹히지 않자 니키야를 죽이겠다고 마음먹는다.
<2막>
솔로르와 감자티의 결혼이 성대하게 거행된다. 니키야는 슬픔을 감추고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춤을 추던 중 솔로르가 보낸 꽃다발을 받고 기뻐한다. 그러나 그 꽃다발은 사실 라자 왕과 브라만이 보낸 것으로 그 안에는 독사가 숨어 있었기 때문에 니키야는 춤을 추던 중 독사에 물린다. 브라만은 니키야에게 해독약을 주면서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니키야는 약을 먹지 않고 죽음을 택한다.
<3막>
솔로르는 니키야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슬퍼하며 괴로워한다. 솔로르는 꿈속에서라도 니키야를 만나기 위해 아편을 먹고 환각상태에 빠져든다. 꿈속 망령들의 왕국에서 니키야와 재회한다. 솔로르와 니키야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스카프를 함께 든 채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볼쇼이의 버전에서 솔로르가 꿈에서 깨어 비통해하며 공연이 끝난다.
발레단에 따라 이 3막에서 끝날 수도 있고 솔로르와 감자티의 결혼식 중에 신전이 무너져서 전원 사망하는 권선징악의 형식으로 끝나는 버전도 있다. 신전이 다 무너져서 죽은 솔로르가 니키야와 저승에서 재회하는 걸로 끝난다.
러시아 고전발레 안무가인 마리우스 쁘띠빠 버전에서는 신전이 무너져 모두 사망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여러번 리뉴얼 되는 과정에서 이걸 빼버린 바람에 현재도 러시아에서는 3막으로 끝내는 것이 거의 고정되어버렸다. 라자 왕과 브라만의 악행에 분노한 신이 신전을 붕괴시켜서 벌을 내린다는 과정이 과거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국가였던 러시아에서는 확실히 거슬리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현재 신전이 붕괴되어 모두 사망하는 4막 버전까지 공연하는 발레단은 미국의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가 있다.
추천할만한 공연일까?
무용수들이 다른 어떤 작품보다 많이 필요한 작품이다. 군무가 상당히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원수가 충분하지 않은 발레단에서는 divertissement를 몇 개를 생략하기도 한다. 세헤라자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제작비와 무용수가 많이 드는 작품이라서 한번 무대에 올리기 쉽지 않지만 만일 공연을 한다면 꼭 보라고 추천한다. 돈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divertissement : 디벨띠스망. 모두에게 즐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서로 다른 춤들의 집합을 순서에 삽입하는 것. 무용수의 기술적인 솜씨와 용모를 보이기 위한 짧은 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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