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용어 해설을 주제로 써볼까 고민해봤다. 그렇지만 용어 해설은 이미 많은 포스팅과 검색만 해도 찾아볼 수 있는 주제라는 생각에 곧바로 포기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우연히 작품 제목이 눈에 띄었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에게 어렵다는 느낌을 주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작품마다 대중음악에는 없는 생소한 제목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음악 용어는 전공할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몰라도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다고 느끼지만 제목 읽는 방법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클래식 음악 제목의 형식
Symphony라는 용어나 Sonata, Concerto, Cadenza, Cantata 등은 교향곡, 소나타, 협주곡, 카덴차, 칸타타로써 조금만 검색해도 의미를 금방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에 놓인 단어와 숫자들이다. 베토벤의 Symphony No.9, D minor, Op.125를 예로 들자면, Symphony는 심포니 즉, 교향곡이라는 건 알겠는데 뒤에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를 전공생 아니면 거의 모를 것이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는 사람들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심포니 뒤의 No.는 숫자를 뜻하는 '넘버, number'의 줄임말이다. 즉, 장르별 일련번호다. 그리고 심포니는 장르를 뜻한다. symphony no.9의 의미는 교향곡 중 아홉 번째 작품이라는 뜻이다. 베토벤은 교향곡뿐 아니라 각 악기별로 또는 장르 별로 수많은 작품을 작곡했다. 교향곡 9번은 베토벤이 작곡한 수많은 장르 중에 교향곡만 콕 찍어서 아홉 번째로 작곡한 교향곡이라는 뜻이다. 베토벤은 교향곡만 총 아홉 작품을 작곡했다. 5번 교향곡은 그 유명한 '운명'이라는 부제목을 달고 있다. 9번 교향곡의 부제목은 '합창'이다. 매년 송년음악회 단골로 연주되는 엄청나게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이런 부제목들은 베토벤이 직접 지은 것은 아니고 후세 사람들이 곡의 느낌을 살려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행동이 그의 교향곡을 길이길이 기억되게 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베토벤 Symphony no.3은 교향곡 중 세번째라는 뜻이 있고 '영웅'이라는 부제목이 붙어있다. 차이코프스키 Symphony no.9는 '비창'이라는 부제목이 달려있다.
자, 이제 No.의 뜻이 이해되었다면 뒤에 있는 D minor는 이 곡의 중심이 되는 조성을 표시한 것이다. 작품마다 조성을 제목에 표시한 것도 있고 그 반대도 있으니 이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라단조'가 된다. 참고로, 장조(major)는 제목에 잘 표시 안 하고 음이름만 표시하는 관례가 있다. 예를 들면,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의 표기를 레코드 표지에서 확인해보면 대부분 아래와 같이 인쇄되어 있을 것이다.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op.35.
마지막으로 Op.125가 남았다. Op.는 Opus의 줄임말로 작품번호를 의미한다. No. 와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장르별 작곡 순서를 의미하느냐 아니면 악보가 출판된 순서를 의미하느냐다.
이쯤에서 베토벤 Symphony No.9, D minor, Op.125의 의미를 풀어보면 베토벤의 교향곡 중에서 9번째 곡, 라 단조, 전체 작품 중에서 125번째로 출판된 작품이란 뜻이다. 참고로 베토벤의 총 작품 수는 미완성곡, 분실된 곡, 보류된 곡까지 모두 합치면 1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정도만 알아도 거의 웬만한 클래식 음악 제목은 그 뜻을 다 읽어낼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제목의 예외적인 형식
하지만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바흐와 헨델,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모차르트,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슈베르트 들의 작품번호(Opus)에는 각각 독특한 고유의 기호가 쓰인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작품 제목을 보자. Symphony No.40, K.550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K는 무엇일까. K 또는 KV는 쾨헬의 약자이며 모차르트의 악보를 연구하고 수집했던 독일의 음악학자이자 식물학자였던 쾨헬이 수집한 순서 번호라고 한다. Opus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바흐 음악에는 Opus 대신 BWV라는 표시가, 헨델 음악에는 HWV, 슈베르트 음악에는 D로, 그리고 나도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베토벤의 음악에도 WoO라는 순서 번호가 있다고 한다. 그냥 전부 다 Opus와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자세하고 까다로운 형식으로 제목을 정했나 싶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불평했었다. 작곡순서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출판 순서까지 표시는 왜 하며, 작곡가별로 표시는 왜 따로 하느냐는 것이 큰 궁금증이었다. 대체 누가 이렇게 하자고 정한 걸까? 이 질문의 답은 모른다. 막연하게 그냥 음악학자들이 그렇게 정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고루하고 꼰대 같은 학자들이 근엄하게 정한 거라고 어릴 때는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사실 클래식 음악 작품 하나하나가 전 인류에게 남겨진 엄청난 문화재이다. 클래식 음악의 작품 제목들은 지금으로부터 수 백년 전에 작곡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 기록하고 발굴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의 산물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잃어버리고 분실된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수 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듣고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뮤직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노력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잘 보존되어 내려와 지금 우리가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또 한 가지 사실을 감동스럽게 증명해준다.
그것은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이 허구가 아니가 실제로 존재했던 인류였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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